늙은 메뚜기..
흙에서 생활의 양식을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날이면 날마다 잡초와의 전쟁이 필수조건이라는 걸
예전엔 미쳐 몰랐다.
살것다는 잡초와
자리를 잘못잡았으니 뽑아내야겠다는 나와의 소리없는 전쟁터..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뽑혀나가야 하는 잡초에 대한 미안함이나 안쓰러움은
손톱만큼도 없다.
다만..왜 여기 내 삶의 터전에 자리잡아 나를 귀찮게 하는것만 얄미울뿐.....
잡초와의 전쟁에 승승장구를 하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데
늙은 메뚜기 한마리 폴짝 포올짝..기운없는 뜀박질이 이어진다.
난 다만 잡초를 뽑기 위해 앞으로 전진할 뿐인데
늙은 메뚜기에겐 그런 내가 가냘푼 거미줄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졌나부다.
한발짝 잡초 가까이 다가서면
기운없는 메뚜기는 열두발짝 움직이 앞으로 앞으로 몸을 피한다.
난 또다시 잡초 가까이 한발짝 앞으로 나가면
잠시 가픈 숨을 몰아쉬던 메뚜기 다시 열두발짝 기운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나..............너 위협하려는게 아니야...
난..너의 적이 아니라고. 네게 관심도 없고 너랑 놀아줄 시간도 없어..
다만..나 때문에 니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게 조금 마음에 걸릴뿐..
애야..앞으로만 가지 말고 옆을 살짝 몸을 틀어 움직여봐 열두발짝 말고 딱 두발짝이면
되는데.....넌 기운이 없어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는 모양이겠지만..
난 정말로 널 어떻게 할 생각이 없거든..'
그러고도 한참 내 한걸음에 메뚜기 열두걸음은 계속 되었고..
그러다 그러다..지쳤는지 포기했는지...
옆으로 살짝 두어걸음 옮기더니 주저 앉아 버렸다.
'그래. 그거야. 거기 그냥 그렇게 쉬고 있으면 돼. 그럼 넌 거기서 쉬고~
난 잡초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늙은 메뚜기
건불처럼 말라버린 잠자리의 주검..
가을은 그들에게 참 잔인한 계절인듯 싶다..
네가 바람이 부드러워지길 얼마나
기다린줄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얼마나 햇살이 따듯해지길
원했는지도 나는 알아...
그렇게도 원하던 햇살에 바람에
허리한번 펴고 하늘 한번 바라보며
얼마나 얼마나 행복해 했을지도..나는알아.
미안해 하지만.. 여기는 내 텃밭이고,
넌..내가 원하는게 아니야.
한마디 예고도 없이 날카롭게 쑤셔 파서 뽑아버리고 마는
나도 아파.
뽑혀야 하는 너는 더 하겠지만..
어쩌겠니 지금 생엔 내가 너보다 강한걸..
다음생애 입장 바꿔 다시 만난데도..
너도 나처럼 별 방법 없을꺼야.
어째..여기에 자리잡았니
논둑 밭뚝 넓기도 하구만..
왜 하필 여기에 뿌리내려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뽑혀 나가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지만.. 그냥둘수 없었어.
너또한 나처럼 욕심이 많아
머지않아 온 텃밭 다 차지한다 할꺼니까..
나또한 욕심이 과해
이런 저런.. 뽑아 버려야 할 존재들이 너무 많아
아프다.
(어느 이른 봄 마당에 잡초를 뽑고나서 쓴 글이다.
그때만 해도..뽑혀야하는 잡초에 대한 연민이 있었나부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상황이 사람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