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5

우리마을 좋을시고~

그냥. . 2015. 8. 29. 16:14

오늘 수업은 00택배 마당에서 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마을회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붙혀 놓으며

 

어르신들이 어두워서 못 보시고 2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수고로움이 없도록 해달라고 가로등에게

 

부탁했다.

 

장구와 꽹과리를 트럭에 싣고 택배회사 마당으로 가는 길, 바람끝에 귀뚜리 소리가 묻어나는

 

오늘은 바로 사물놀이 야외 수업이 있는 날이다.

 

사물놀이? 사물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을 주민들이 장구와 꽹과리를 배우기 시작한지 두달 가까이 되어가는 날이고

 

늘 비좁은 마을회관에서 앉아서 배우는 시간이 많아 불편함도 아쉬움도 있었는데 맘껏 놀아보자시며

 

실내에서 수업할때는 옆사람 소리에 내 소리가 묻혀 제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자신의

 

본 모습을 볼수 있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은 부담으로 어느만큼은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야외수업 첫날인 것이다.

 

마당의 조명이 불을 밝히니 날벌레들이 준비도 없이 시작한 한바탕 놀이가 흥에 겹다.

 

코앞에 사시는 아저씨, 저 아래 사시는 아주머니, 옆집 언니, 외딴집 언니, 선생님사모님

 

이전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 등등 등...

 

오늘 밤을 위해 하루종일 아무석도 안하고 체력충전 만 하시고 오셨다는 듯 활기 찬 모습들이셨다.

 

 

우리동네는 조선시대 최최의 비가비(양반광대)이자

 

정조, 순조 때 활약한 판소리 8명창 중 최고로 알려진 국장 권삼득 선생의 생가와 소리굴, 묘지가 있는

 

마을로 그 자원을 보전 및 재조명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농어촌문화교실 공모를 통해 선정되어 시작 된

 

사물놀이 교실이다.

 

사실 마을에서 사물놀이 수업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는 주민들의 평균 연령도 높으시고 시골마을의

 

특성 상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 조차 편안한 노후를 누리시기 보다는 농사일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숨가픈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시는 분들이라 글쎄....호응이 될까...싶었다.

 

72일 사물놀이 수업에 대한 설명회가 있던 그날은 36도를 넘낟드는 더위가 온 주민들을 괴롭혔다.

 

비닐하우스 일에, 꽃밭 김메기에, 고추농사 등등...

 

온몸으로 더위랑 맞서 싸우며 살아가야하는 시골사람들의 고달픔이 절정을 행해 내달리던, 그날

 

나 역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남편이 이장이니 사람 숫자나 채워야지...싶은 마음으로 참석했는데

 

넓게만 느껴지던 마을회관이 비좁을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 해 주셨다.

 

용진면에서 처음 약속해 주신 것보다 더 많은 악기를 지원 해 주시고

 

마을에 사업체를 두고계신 분들이 도와주신 대형 선풍기, 음료수, 방충망에 벽시계까지..

 

하나하나 제 모습을 갖추어 가며 수업은 진행 되었다.

 

그 덥던 7월 몇번째 수업날이였던가 유난히 덥던 그날

 

장구를 몇번 두드리면 등줄기로 땀이 주루루루룩

 

꽹과리가 개갱개갱 개개개갱 소리를 내면 기운이 쫘아아악

 

어르신들이 지처간다..

 

언니들이 지쳐간다

 

나도 지친다..싶을 즈음

 

선생님께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2층보다 훨씬 좁지만 에어컨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 수업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거실에서, 남자 어르신들 방, 여자 어르신들 방문을 활짝 열고, 에어컨 돌리고 선풍기 돌리고..

 

놀러나 가아세~ 놀러나 가아아아세~ 월산리 둑으로 놀러나 가세~하시면서

 

선생님께 한자락 뽑으시며 함께 하자 하시니

 

비좁아도 흥이나고 시원하니 어깨가 절로 들썩이고 고개가 절로 까딱까딱 언제 더위에 지쳤냐는 듯

 

주민들 사이에 안개처럼 피어 올랐던 지침의 그림자가 웃음과 흥겨움과 행복함으로 씻겨짐을 느꼇다.

 

온종일 땀으로 목욕을 하며 힘들었던 일상의 고단함 마져도

 

가까운 듯 멀고, 아는듯 알지 못하고, 넟설고 어렵기만 했던 우리소리 한자락에 타는 목구멍에 샘물

 

넘어가듯 스며들어 시원하고 개운하고 행복하다...그래..행복하다.

 

그 행복함이 하늘을 감동 시켰을까? 다음주에 바로 2층 회관에어컨이 설치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덩덩 궁궁따궁

 

더 궁따 궁따 궁따따 궁따

 

따 궁따 궁따 궁따따 궁따

 

덩 덩 덩 덩 따따

 

더더덩 더더덩 덩덩 따따

 

덩덩 덩덩 더더더덩따

 

휘모리,자진모리, 오방진. 인사굿. 등등

 

하나 둘 손에 익숙하고 귀에 익숙해지는 장단들이 많아질수록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다

 

인생사가 뭐라고 울고 웃고 좌절하고 서글퍼하는가

 

어차피 한세상 신나게 놀아나 보자 싶은 마음

 

.........어려서 시집살이 죽을 것 같다 좌절할 때 이런 즐거움, 이런 배움의 시간 있었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았을까....싶은 생각, 아쉬움은 단지 나만의 것은 아니였으리라.

 

지금이라도 이렇게 벗어 버릴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행운인지 싶다.

 

늦여름 밤하늘에 별님들이 총총 달님을 호위할때

 

서로 장구 메는 것을 도와가며 소근 거림이 즐거울 때 어느새 도착하신

 

선생님과 선생님의 제자~ 애기 선생님께서도 야외 수업 장소로 선택된 마당이 어찌보면

 

어이없고 우습기도 하셨겠지만 참 좋은 장소라고 웃음으로 인정해 주시니 그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어르신들 장구 메는 걸 도와 주시던 선생님이 한발짝 떨어져 보시더니

 

"~ 이거 사진이라도 찍어 두셔야겠는데요~

 

이장님 사진이라도 한장 찍으시지요. '하며 흐뭇해 하시는 말씀에

 

자신의 폰에는 카메라라고는 애초부터 없는 것으로 알고 살던 우리집 남자가 사진을 찍겠다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 일채 시작입니다..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개갱 개갱 개개개갱 ....꽹과리를 울리시니

 

덩덩 궁궁따 궁. 덩덩 궁궁따 궁.....

 

엄마 닭을 따르는 병아리마냥 잘도 따라 나가신다.

 

손이 박자를 맞추면 발동작이 제멋대로이고,

 

발걸음을 신경쓰면 손이 지맘대로 장구를 두드리는 상황이 이어지지만

 

누구나 다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며 앞선 사람을 따라가는 것은 그저 어느새 이만큼 배워서

 

장구 메고, 꽹과리 들고 야외수업까지 나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때문은 아니였을까 싶다.

 

선생님께서 왼발 왼발 왼 발 ~ 외치시면

 

우리는 또 왼발 왼발 왼발을 입으로 따라 하면서도 발은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망각한 채 제멋대로

 

움직이다가도 한분 두분 자세를 바로잡에 제대로 맞춰지는 순간이면

 

선생님께서

 

'~ 제가 원래 거짓말을 못하거든요. 정말 정말 잘하시네요.

 

최고에요 최고~'칭찬 주시니

 

정말로 최고는 아니지만 최고인 듯 사푼 사푼 왼발 오른발 선생님 잘동작을 눈으로 따르며 열심이다.

 

'자아 발을 이렇게 하면 안되요. 발뒤꿈치부터 이렇게~' 하시면서 사푼사푼 감히 흉내도 못 낼 흥겨움으로

 

선을 보이시는 선생님의 그 폼새를 따라 해 보려고 용을 쓰다가도

 

덩덩 궁궁따궁 ~ 손장단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왼발 오른발 발 맞추기가 쉽지 않다.

 

중간 중간 애기선생님이 바쁜 벌음으로 찾아 다니며 틀린 동작들을 바로 잡아 주시고, 사진도 동영상도

 

찍어주시고 바쁘시다.

 

쬐끔 우월한 장구부대가 잠시 쉬어가는 시간

 

꽹과리 부대의 연습이 따로 시작되고

 

음주에는 능하지만 가무에는 영 소질이 없는 우리집 남자인데

 

거기다가 수업까지 게을리 한 우리집 남자 꽹과리 솜씨에 허허허허 웃음으로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 관심이 우리집 남자를 더 작게 만드는 건지 그 부담이 우리집 남자의 손과 마음을 묶어 놓은건지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꽹과리 장단이 우리집 남자가 하면 누가 들어도

 

웃음부터 흘러나오는 엇박자라는 사실에 왜 저래~ 라기보다는 헤헤헤헤 웃음오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안돼. 난 노래나 악기는 안돼는가 벼 ..좌절하는 우리집 남자에게

 

수업을 게을리 해서 그런 거라면서 안빠지고 열심히 한 사람이랑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느냐고 한소리

 

했더니 집에서라도 열심히 연습해 보겠단다.

 

선생님께서도 바쁘신 시간 내어 개인 레슨까지 해주신다니 제대로 꽹과리 소리를 내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 마음보다 우리집 남자 마음이 더 간절하겠지 싶다.

 

9월 어느 멋진 날 선생님께서 노년의 제자들을 위해 준비해 주신 공연장 나들이도 경험하고 나면

 

하늘은 더없이 높아지고, 계절은 깊어지고, 마음 또한 풍성해지겠구나..싶다.

 

일채, 인사굿에 이채 삼체 그리고 오방진까지 갈길은 멀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은 없어도, 잘 따라하는 사람 못 따라하는 사람, 제멋대로인 사람은 있어도

 

하나같이 즐겁게 즐기며 배워 나갈 수 있는 것은 주민들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나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능력 덕분이겠지만

 

타고난 흥에 배우고자 하는 나이불문의 어르신들의 열정과 몇몇의 젊은 기운과 즐기면서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시며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라는 말씀으로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따듯한 시선이

 

이루어 낸 아우라 아닌가 싶다.

 

 

세월의 무게를 알고, 삶의 세파의 고단함 도한 마다하지 않고 감당 해 낸

 

정자나무가 멋진 우리마을에 가을이 깊어지고, 첫눈이 내릴 즈음이면

 

꽤 괜찮은 농악놀이패 탄생을 기대 해 봐도 좋지 않을까..싶다.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483-1 김순자

 

010-2738-5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