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먹는
몰래 먹는 맥주 한 캔이 더 맛나다.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뭐 안될게 뭐 있겠어. 하루쯤 그것도 캔 하나인데
냉장고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차갑지도 않은
쓰디쓴 맥주가 유난히 고픈 날이었다.
날이 흐려서 그랬던 것 같다.
날이 흐리니 으스스 춥고
머리는 띵 하고
어깨는 묵직하고 손은 차가운 찻잔 하나 들었으면 좋겠고,
다리는 저렸다.
이제 시월이고, 아직 시월도 절반이나 남았는데
흐림이 많은 가을은 참 쓸쓸하다.
코스모스 가버린 들판에는 별을 닮은 빨간 홍초가 옹기종기
모여 피었다.
여기저기 탈곡하는 기계들이 이발기처럼 들판을 밀어가고 그 빈자리에는
쓸쓸함이 가득하다.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
아들이 또 똑같은 이유로 불만인 남편
이제 됐구나 싶으면 다시 되돌아가고,
또 이제 이해했구나 싶으면 다시 돌아가는...
아들한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주기 지쳤다.
마약 퍼부었다.
나한테 그러지 말고 아들한테 직접 말해서 포기를 시키든지
어쩌든지 알아서 하라고 왜 나한테 그러느냐고
아들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왜 그것이 갸 때문이냐고,
마악 따지고 들었다.
아빠가 아들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들이 잘 되겠느냐고
좋은 말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줘도 조심스러운 것이 자식인데
마악 뭐라 했다.
한 번도 조심스러워서 아들에게 손톱만큼의 좋지 않음이 더 갈까 봐
벌벌 거리며 말 한마디 한했는데 속이 뒤집혔다.
그래서 마악 퍼부었다.
나이 먹으니 목소리만 커진다더니 그런가 부다.
다른 날 같으면 화가 나 있을 텐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한다.
나는 이미 혼자서 방황했고,
혼자 있고 싶어서 컨테이너 창고 뒤쪽으로 돌아 가
돌멩이도 돌탑을 쌓았다 부셨다를 한 시간 반이나 하고 돌아왔는데
그런 나를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 집 남자가 그동안 전화를 다섯 통과 아들 넘의 한통의 부재중 전화가
방안에 있는 폰으로 울려 댔다는 것뿐,.,,,
요즘 가끔 혼자 있고 싶다.
아니 자주 혼자 있고 싶기도 하다.
누구 말대로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앉은뱅이책상이라도 책상 하나에 노트북, 그리고 국수 방석
그거면 충분한 나만의 공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다.
우리 집 남자도 참 많이 변했다.
고집이 없어졌다. 약해빠진 마누라 때문인지
나이가 고집을 잡아먹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맞춰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남편은 닮아가는 아들 넘의 어떤 모습들이
참... 스럽다.
맥주 한잔 마시고 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옆집 둥이 언니가 산국 꽃차를 만들어 주셨다
흐미..... 쌀알보다도 작은 꽃망울들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유리병 안에 수천 송이 꽃망울들이 너무 이뻐서 미안타.
내일이나 모레 즈음 국수 방석 뜨면서 둥이 방석 하나 떠서 드려야겠다.
정말 기분 좋은 산국 차...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