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소심한 사치

그냥. . 2020. 10. 25. 20:23

효자동 다있어까지 가서 쓸어 담아 왔다.

작은아이 편도 수술했을 적에

병원에서 심심해서 옆에 있는 거기 가서

여섯 개 사다가  강아지 옷을 떠 봤는데 너무 맘에 드는 거야

뜨개질하는 내내 손도 건조해지지 않고,

떠서 입히고 빨고 하다 보니 보플도 많이 안 일어나고

그러는 중에

그때 남은 뭔가 하기에는 어중간한 실이 있었는데

동영상으로 목도리 뜨는 거 너무 쉬운데

너무 맘에 드는 방법이 있어서 떠 봤는데

목도리로는 영 아닌 것 같은 색이 너무너무 맘에 드는 거야

그래서 효자동까지는 너무 멀어서

인터넷 쇼핑몰 다 뒤져 봤는데 없는 거야

그래서 남편더러 이야기했더니

실 사러 거기까지는 안 가겠다고 그래는데 별 수 있어.

삼십 분 이상 걸리는 거리 뭐 혼자 가도 되기는 하지만

운전이 좀.. 그래 아직은

그래서 잊고 있다가 

지나가는 말로 다시 한번 이야기했더니 가자 해서~ 좋아라 하고

다녀왔지.

다행히도 내가 찾는 실도 있었고,

보들보들 실들이 너무 맘에 들어서 쓸어 담듯이 

담아 왔다.

우리 집 남자 보면 어깨 아프다며 실 많이 샀다고

잔소리할까 봐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몇 개만 보여 줬다. ㅎㅎ

목도리도 뜨고, 모자도 떠 보고 싶고,

또 아들 여자 친구도 하나 떠줄까 싶기도 하고,

국수 옷도 뜨고.

실이 얇고 포근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내 인생에서 뜨개질이 빠졌다면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깊어 가는 가을이 좋고, 귀염으로 똘똘 뭉친 국수가 있어 좋고,

감사한 가족이 있어 좋다.

죽을 것 같던 여름은 가고, 

이제는 좀 살 것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이 계절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