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치
효자동 다있어까지 가서 쓸어 담아 왔다.
작은아이 편도 수술했을 적에
병원에서 심심해서 옆에 있는 거기 가서
여섯 개 사다가 강아지 옷을 떠 봤는데 너무 맘에 드는 거야
뜨개질하는 내내 손도 건조해지지 않고,
떠서 입히고 빨고 하다 보니 보플도 많이 안 일어나고
그러는 중에
그때 남은 뭔가 하기에는 어중간한 실이 있었는데
동영상으로 목도리 뜨는 거 너무 쉬운데
너무 맘에 드는 방법이 있어서 떠 봤는데
목도리로는 영 아닌 것 같은 색이 너무너무 맘에 드는 거야
그래서 효자동까지는 너무 멀어서
인터넷 쇼핑몰 다 뒤져 봤는데 없는 거야
그래서 남편더러 이야기했더니
실 사러 거기까지는 안 가겠다고 그래는데 별 수 있어.
삼십 분 이상 걸리는 거리 뭐 혼자 가도 되기는 하지만
운전이 좀.. 그래 아직은
그래서 잊고 있다가
지나가는 말로 다시 한번 이야기했더니 가자 해서~ 좋아라 하고
다녀왔지.
다행히도 내가 찾는 실도 있었고,
보들보들 실들이 너무 맘에 들어서 쓸어 담듯이
담아 왔다.
우리 집 남자 보면 어깨 아프다며 실 많이 샀다고
잔소리할까 봐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몇 개만 보여 줬다. ㅎㅎ
목도리도 뜨고, 모자도 떠 보고 싶고,
또 아들 여자 친구도 하나 떠줄까 싶기도 하고,
국수 옷도 뜨고.
실이 얇고 포근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내 인생에서 뜨개질이 빠졌다면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깊어 가는 가을이 좋고, 귀염으로 똘똘 뭉친 국수가 있어 좋고,
감사한 가족이 있어 좋다.
죽을 것 같던 여름은 가고,
이제는 좀 살 것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이 계절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