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종일 내리고도 밤이 깊도록 씩씩하게 내리고 있는
빗소리가 좋다.
어제 엄마가 백신을 맞았는데 언니가 엄마 혼자 계시다
혼자 아프면 어쩌냐며 내려왔다.
나는..
울동네 어르신들이 괜찮으시길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언니는 역시 큰딸이라 생각이 깊다.
내가 어지간하면 언니가 내려온다 하면 만사 재껴놓고 나도 엄마네로
향하는데 이번은 딱 날짜 맞춰서 일이 있었다.
하루종일 계속 바쁘지는 않지만
일으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
오전에 일을 좀 일찍 끝내고 엄마네로 갔다.
아침에 남편이 고기 사갈까? 전골 사갈까? 아님 동태찌개 사갈까? 하는 거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음식을 사 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과일이나 엄마 필요한 물건이나 뭐 집에 서 가져갈 그런 것들만
챙겼지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고기 드신지가 오래 됐을 것 같았다.
원래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시지만
혼자서 삼겹살 구워 드실리도 만무하고,
동생이 왔을 때도 언니가 왔을때도 찌개 거리를 사다가 찌개를 끓여 먹기는 했어도
엄마가 아마도 명절 이후로 육류를 국 종류 외에는 드시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좋은 삼겹살하고 집에서 담은 양파, 명이, 참나물 장아찌랑 쌈장이랑
탄산음료 하나 사가지고
가스버너랑 불판도 챙겨갔더니
안 그래도 엄마가 언니 오는 길에 삼겹살이나 좀 사다 먹을까나 하려다 말았다며...
잘 드신다.
언니도 잘 먹고, 남편이랑 나도 잘 먹고 왔다.
엄마랑 먹으니 더 맛났다.
나는 왜 이런 간단한 엄마의 부족한 부분도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
좀 자책도 들었고,
일깨워준 남편이 고맙기도 했고,
엄마가 잘 드셔주니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오늘 종일 기분이 좋다.
가끔 종종 고기도 사 가고,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생선도 좀 사 가고
그래야겠다.
엄마라고 누룽지만 좋아하는 거 아니고,
엄마라고 고기 못 드시는 것도 아니고,
엄마라고 김치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