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난 금요일 늦은 저녁 작은아이가 집에 왔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부산에서 학회가 있는데 집에 다녀오고 싶단다.
그래서 집에 오랜만에 오면 한가하게 쉬었다 올라갈 줄 알았는데
아들은 청춘의 아들은 집이 있는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여자 친구를 만나고
열 시 너머 동네 버스를 탔다고 마중 나올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었다.
아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집에 왔고,
지난 설에 보고 원룸 얻어 주었을 때도 못 보고 온 아들을 봤다.
많이 말랐으면 어쩌나....싶었는데 그런대로 현상유지는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힘들겠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아무리 지방 대학에서 날고 뛰었다 해도 서울서 뛰고 나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함께 하기가 어디 쉽겠나 싶다.
물론 예상하고 갔지만 예상하는 거 하고 현실로 부딪히는 거 하고는 다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해야 되는 시점이 되돌아온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만에 그 선택이 뒤집혔다면 물론 분명히 후휘할 거 아니냐 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면 되는 거라고...
네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하려고 발버둥 치지는 말라고 했다.
그렇게 피곤하다는 아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토요일 오전 내내 늘어져 있는 아들에게 옷 좀 사라고 이것저것 골라놓고 선택하게 하고..
그렇게 멋을 부리고 옷 좋아하더니 그것도 한때였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일요일 올라가는 기차표를 예약했다.
오후 한시 넘어 운동 다녀온 큰 아이랑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상을 미리 봐 놓고
큰아이 차 들어오는 거 보고 밥솥을 열었느데...흐미..밥이 없다.
내가 집에 있으니 따듯하게 새로 밥 해서 점심 먹어야지 해 놓고는
반찬만 차려 놓은 것이다.
뭔 이런 일이...했더니
큰아이는 비빔면 먹는다 하고, 작은 아이는 다행히도 하나 있는 햇반이면 된다고 하고
나는 밥솥 바닥에 붙어 있는 밥 긁어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는 과제할 게 있다며 스터디 카페에 가고, 큰아이는 시원하고 좋다며
도서관에 책 읽으러 갔다.
집에 와도 바쁜 작은아이..
내일모레면 알바 시작할 거면서 생에 가장 한가한 시간이어도 좋을 텐데
운동이며 등산이며 헌혈이며 도서관 다니는 걸로 바쁜 큰아이..
오후 내내 늘어져 있었다.
아들이 집에 왔는데 내 몸이 왜 늘어지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지만..
우선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 보여서 좋았다.
저녁 늦은 시간에 집에 온 작은 아이..
결국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한 끼도 못 먹어
오늘 낮에는 소고기 사다가 구워 먹었다. 일요일이라 남편도 집에 있고 해서..
아이 차 시간까지 룰루 랄라 티브이도 보고 폰도 보고 평화롭게 지내다가
시간 맞춰 남편이랑 아이 역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고 있는데
아이가 전화가 왔다.
엄마! 기차표가 없어. 하고...
뭔 소리야 분명 엄마가 보내기 했는데... 했지만..
확인해 본 결과 어제 토요일 오후 세시 반 표였다는 사실..
이런..
어플 들어가 보니 이미 기차표는 매진 매진 매진....
급하게 재검색 재검색해 봐도 매진...
아들은 괜찮다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버스 타고 가겠다고..
버스표도 검색해보니 달랑달랑하고..
기차표 재검색을 반복하다가 한 시간 늦은 네시 반 케이티엑스 표 끊어서
아이에게 전화했다.
택시 돌려서 역으로 다시 가서 4시 반차 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해서 아들은 다시 역으로 돌아가서 원래 가려했던 기차보다 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시간의 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케이티엑스도 정차역 수에 따라서 시간이 좀 다르더라고..
원래 타기로 했던 차 보다 한 시간 가까이 더 걸리는...
그래서 안 그래도 바쁜 아이 두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게 했다.
이런 자괴감..
뭐 그런 걸로 자괴감까지.. 할지 모르지만 그냥 우울했다.
사실 어제부터 좀 그랬다. 어지럼도 기웃거리고, 귀 엉함 증상도 왔다 갔다 하고...
그랬으면 더 신중했어야 하고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깔끔하게 기차표 하나 값 날린 것은 그렇다 치고..
수 십 번은 해 봤을 기차표 끊는 이런 간단한 일을 실수하다니..
가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집중력이 확실이 떨어지는구나.. 싶기는 했었지만
가족 누구도 뭐라지 않는데..
남편은 에이그...한마디 하고,
큰아이는 컨디션 안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신경 써하고, 엄마 어제부터 안좋았잖어. 하고
작은 아이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나는 그냥 나는 좀 우울하다.
아니 컨디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좀 덜렁댔고, 날짜 확인 없이 검색된 거 구매버튼 누른 거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실수에 고생할 아들 생각하니 마음이..그랬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지 어쩐지.... 자꾸 스스로에 자신이 없어진다.
아냐 그냥 실수한 거야..
사람이 살면서 실수할 수 있지. 어떻게 날마다 잘해..
한 번 더 조심하고, 한번 더 확인하고, 한번 더 세심하게 신경 쓰며 살면 되는 거지..
이 여름만 좀 누그러지면 괜찮을 거야. 한 두어 달만 신경 쓰고 조심하면 돼.
싶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주변 시선이 가족들의 걱정이
나를 더 겁쟁이로 만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쨋건...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