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네
아침에 일하러 나가면서 차를 끌고 다닌다.
동네 앞이지만 한 번 습관을 잘못 들여놓으니
그 거리도 귀찮다.
사실 날이 추워진 이유도 있지만 일하고 나서 걸어 들어오려면
그 거리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오늘 아침은 그다지 춥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기온을 보니 아침보다는 낮 기온이 더 낮기도 했고 눈이 예보되어 있었기
때문에 늦은 점심까지만 일을 할 생각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해가 뜨면 뜨듯하고 해가 뜨지 않으면 춥다.
비가 오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눈이 오는지는 일부러 내다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눈은 올까 바람이 제법 불어 대는 소리에 그래 눈이 실려 있었으면 했다.
점심 지나 남편에게서 집에 안 들어가고 뭐하느냐는 전화를 받고..
내 계획대로 몇 시까지만 하고 들어 갈 거라고 말했더니
날도 추운데 무슨 시간을 재고 있느냐고 얼른 들어가라고 난리였지만
나는 대답만 누리네 집 소시미처럼 잘하고 목표한 양을 채우고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눈은 없었고, 바람만 세상 태어나 처음 눈을 본 멍뭉이 마냥 뛰어 댕겼다.
우와 칼바람에 오싹 어깨 꺾이고 고개 움츠러들고...
서둘러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데 이넘이 죽었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살아나지를 않는다.
뭐여..
걸어가려면 추운데.
어쩌니 해도 10분은 걸어야 하고 아침에 차를 가지고 나온 탓에 옷도 얇게
입고 왔는데 말이다.
다시 한번 시동을 걸어 보는데 묵묵 부답이다.
이때 딱 맞춰 남편이 전화가 왔다.
들어갔냐?
들어가려고 하는데 차가 방전됐어.
또?
그러게 블박도 꺼 놨는데 배터리 갈은지도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어쩌려고..
그냥 걸어 들어가야지. 우선은 그냥 들어가려고 너무 추워
그래 차 문 잘 잠가놓고 얼른 들어가
어 그래야 할 거 같아. 지금 서비스 불러 충전해 봤자 내일 또 나갈 거 같아.
했더니 자기가 와서 알아서 해 준다면 들어가란다.
집에 걸어 들어오는 길...
사시나무가 겨울바람에 이렇게 떨어서 사시나무 떨듯 하나 보다 생각하며
바들거리며 뛰는 듯 나는 듯 집에 들어오면서 드는 생각....
저놈의 차도 꼭 주인 닮았어.
주인 닮아 비실 거려 라며 괜한 차에 대고 투덜거렸다.
이미 내 목소리는 한나절 노동에 울 엄마 발뒤꿈치 갈라지듯 갈라져
누구에게도 나 피곤하고 체력 방전 됐으니 건들지 마시오~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있는데 차는 없네 라는 아들 말에
배터리 방전~ 했더니
또! 한다.
그러게 베터리 바꾼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엄마 재생이나 뭐 그런 거로 속은 거 아니야? 지난번 나처럼..
아닐걸... 아마 엄마 차 서비스센터 아님 아빠 지인이 하는 공업사 가서 갈았을 텐데,..
했더니 그럼 재생은 아니겠네 한다..
엄마 닮아서 그래 했더니...
쉽게 방전되는 거 하더니 그러게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사이즈 좀 키워~ 한다.
그때까지도 눈은 오지 않았다.
하나 구입하려고만 마음먹었던 털장갑을 직접 떠 보기로 마음먹고..
맘에 드는 실을 찾아 헤매는데
이놈의 눈이 보는 기준이 없는 건지 맘에 쏙 드는 실을 찾을 수가 없다.
날마다 강아지 옷만 만들다 보니 내 눈높이가 강아지 옷에 맞춰져 있는 모양이다.
집에 있는 실로~ 멍뭉이와 세트로다가 하나 떠 보고
괜찮게 떠지면 좋은 실 사서 떠서 엄마도 주고 아들도 주고 언니도 줘야지~ 생각하며
새로운 소일거리를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마당을 뛰어다니는데 아무것도 모르게 밖에 나가고 싶다는
멍뭉이 완전 무장시켜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하우스에 수막도 내려야 하고~ 한 번은 나와야 할 길이니 말이다.
눈이 먼지처럼 날린다
이게 무슨 첫눈이야.
첫눈이라면 적어도 벚꽃잎만큼은 아니어도 애기별꽃만큼은 되어야지
먼지도 아닌 것이 하얗게 그것도 바람에 싸다구 때리며 날린다고 그것이
첫눈이라고 할 수 있어.
첫눈은 무슨...
툴툴 거리며 바람에 등 떠밀려 달리듯 걷는데 멍뭉이도 추운지 산책이라기보다는
걷는데 집중한다.
먼지처럼 날리던 눈도 날이 추우니 마른풀 밑 길가에 하얗게 쌓이기 시작하더니
제법 큰 벚꽃잎보다 더 풍성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퐁퐁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라고 흥얼거리니
우리 집 멍뭉이 퐁퐁이 아니거든요~ 하듯이 나를 힐 뜻 바라보더니
집을 향해 정신이 없다.
나는 눈이 내려서 더 걷고 싶은데 우리 집 멍뭉이는 그저 오늘 같은 날
나를 왜 데리고 밖으로 나오셨나요 주인님 하는 듯 원망스럽게
발걸음만 바쁘다.
눈은 내리고..
남편은 퇴근 전이고..
지 방에서 인강을 듣고 있을 아들 넘에게 눈 온다~ 하고 문자 넣었더니
요넘은 대답도 없고...
집에 들어와 보일러부터 빵빵하게 돌리고...
다시 패딩 주워 입고, 멍뭉이 겨울 외투 끼워 입히고
마당에 내려서는데
요넘은 현관 앞에서 꿈쩍을 않는다.
추운데 뭐해? 하는 듯이..
나는 좋은데
나만 좋은 모양이다. 눈이 내리는 것이..
눈 내리니 추운 줄도 모르겠고 그냥 좋다.
창 넓은 따듯한 집안에 앉아 가로등 밑으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고 싶은 저녁이다.
눈은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려서
자연스럽게 고립을 만들어도 좋을 저녁이다.
바람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내 몸은 집안에서도 춥다 춥다 하지만
겨울이 왜 겨울이야 이렇게 풍성하게 눈이라도 있어야
겨울이 좋지..
근데 금세 그칠 것 같아.
내가 원하는 내일 아침 온 가족 고립은 안 될 것 같아.
이미 눈송이가 많이 작아진 걸 보니 말이야.
그래도 눈 내리니 마음이 제법 출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