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2022. 12. 15. 23:14

 

비 내리느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서 남편에게 묻는다.

 비 와?
아까 모임 다녀올 때는 비 왔는데 지금은 모르겠는데..

빗소리 안 들려?

안 들리는데! 

아까 당신 들어올 때는 비 소리가 들리더구먼 비 그쳤는가 벼..

아녀 아까도 가랑비 내렸어. 소리 날 정도로 오지는 않았는데...

비 오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

아닐껄...

그렇구나..

그 때가 밤 아홉시 되기 전..

밤은 깊어가고 남편은 꿈길을 걷는데 또 빗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창문을 슬그머니 밀어 보았다.

멀리 동쪽 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 보인다. 

비 안 오네... 그러게.. 비 안 온다니까....

휴우....

오지도 않는 비의 소리가 왜 자꾸 들리는 건지.. 

이 겨울에 이렇게 날도 추운데 뭔 비여. 와도 눈이겠지..

눈은 펑펑 쏟아질수록 고요한 거 알잖아.

내가 비를 너무 좋아하나 보다. 자꾸 빗소리가 들리는 것이....

허.........

이넘의 이명은 겨울이면 더 심해진다는 거... 

세상이 고요해지고, 모든 문들이 바깥세상과 단절을 선언하니

집안은 지루할 정도로 너무 고요한  때문이겠지..

이러다 비에 갇히는 거 아닌지 몰라..

그래도 비는 좀 괜찮아. 더 요란해 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러게 딱 이정도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아침에 러닝머신 위에 있는데 멀리 창 밖으로 보이는

산자락에 어제 내린 눈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 녹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산자락에는 아직 있네...

그러다 문득 어느 집 굴둑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바람에 흩어지다가  하늘로 곱게 솓아 오르다가...

낮게 날다가 또 흩어졌다가..

예전 나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우리 동네에서는 딱 하나 남은 초가집 우리 집..

새마을 운동한다고 흙집에 쓸어져 가는 담장 안에서도 지붕은

슬레이트로 모두 바뀌었었는데 우리 집은 유일한.. 초가집이었다.

그 덕에 가정방문 나오신 선생님께 어떻게 보였는지 노트도 연필도

종종 선물로 받았었는데..

울 아버지는 그랬다.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시고, 그저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면

절대  저지르지 않는...

그래서 우리는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남의 것을 탐내거나 

얼토당토 않은 것을 바라며 살지는 않았다.

볏짚을 눌러쓴 우리 집은 왼쪽으로 부엌이 있었고, 부엌 옆에 안방

그리고 가운데 창고 창고라고 안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뭐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 옆에 작은 방.. 그리고 작은방 앞으로 외양간이 있었다.

그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무너 저 내릴 것 같은 그 집 

그 부엌은 앞 뒤로 사람과 바람과 생쥐와 땅강아지가 참새가

드나들던 문턱만 높고 문은 없는 입구가 있었다.

엄마는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  무쇠솥에는 밥을 안혀

불을 짚히시고,, 백솥에는 씻을 물을 끓이고, 아주 작은 아궁이에는

김치국을 보글보글 끓여  내시곤 하셨다.

밥솥 위에 들어앉아 김을 올려 쪄 낸 시큼한 묵은 김치 찜과

스텡 밥그릇에 쪄 낸 되직한 막된장 한 그릇 

그것 만으로도 밥투정은 안 했던 것 같다.

질 좋은 등갈비나 고등어에 묵은지를 넣고 끓여도 엄마가 그때 해 주신

아무것도 안 들어 간... 잘해야 멸치 몇 마리 고명으로 올려진 밥 솥 안의

묵은지찜 그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허공 위를 유영하는 연기를 보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그래 오늘 일기는 저거다... 했었는데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잠깐 놀랄 일 있고 나니 그 감성이 다 흩어져 버렸다.

사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정말 괜찮은 소재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글도.. 바로 그때 써야 해..

이것 때문에 미루고, 저것 때문에 또 미루고 하다 보면..

그것마저도 나를 기다려 주지는 않아.

이미 지나간 감성이고, 이미 지나가 버린 기억이고 생각인 거야

아무리 붙들고 다시 기억해 보려 해도 그 감성도 아니고,

그 기억도 떠 오르지 않아

그거 알면서.. 또 이렇게 놓쳤다.

하긴 오늘은 운동하다 말고 집에 돌아 왔을만큼의 일이 있었으니...

잠깐 감성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것들은 말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진 다음이었다는 거지..

그러고 나서 이 야밤에 다시 그 감성을 붙잡아 끌어 내려 하니 되겠어!

어림없지.

그러게...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어.

그냥 여느때처럼 날씨가 어떻다거나  멍뭉이 이야기나 하고 말지...

그나저나 얼마나 다행이야.

남편이 있어서..

금세 큰일 났구나... 했는데 남편이 해결했잖아.

우리 집 남자 아니었음 어쩔 뻔했어.

난.. 참 우리 집 남자 빼고 나면 허수아비 같아. 그래..

아무것도 못하는 허깨비..

횡설이고 수설이고... 글이 널을 뛰네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는데...

밤은 자꾸 깊어가며 이제 그만하고 자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