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더듬기
멍뭉이랑 산책을 하면서
옛 기억을 떠 올리며
벌시암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는데 알 수가 없다.
현재 길로 이용되는 곳은 길이 아니었던 곳이다.
경지정리 하면서 마을회관에서 이어지기 좋게 이어진 건지
아님 원래 있었던 길을 정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 기억 속엔 길이 아니었던 곳이고
어린 개집애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조잘거리며 머리 위에
빨래 그릇을 이고 다니던 그 길은 모정을 지나 산모퉁이를 지나
그렇게 길 어느 만큼 을 가다 보면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벌시암이 있었다.
아무리 빨래를 많이 하고,
아무리 더러운 빨래를 빨고
아무리 많은 비눗물과 흙탕물을 풀어내어도
다음날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볼 정도로 물이 맑아지곤 했었다.
어제 빨래하다가 놓인 양말짝이며 발 씻다가 가라앉은 고무신 한 짝도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마르지 않는 그 퐁퐁 솟아오르던 물은 어디로 갔을까?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일부러 파 놓은 샘이 아니었으니 그대로 놓아두었더라면
지금도 맑은 물이 퐁퐁 솟아오른 텐데 말이다.
경지정리 되어 네모 반듯한 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란히 한 듯 정렬해 있어서
옛 모습을 찾을 수도 없는데
나는 여전히 추억 속의 그 길을 찾아보고 그 새암을 찾고 있다.
아카시아 꽃 따러 누비던 야산도
다람쥐처럼 겁 없이 타고 놀던 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뒷산도 이미 옛 모습은 아니지만
여기는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내 추억이 흐릿한 흑백사진처럼 꽉 박혀 있다.
함께 뛰 놀던 친구도 언니들 동생들도 없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 그들의 편의에 따라오고 가며
추억을 더듬겠지.
금세 왔다가 금새 가야 했을 때는 추억이고 뭐고 떠올릴 틈이 없었는데
시간이 여유로우니 묵혀진 앨범 펼친 듯 추억이 아롱이다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