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2023. 3. 31. 22:35

멍뭉이랑 산책을 하면서

옛 기억을 떠 올리며

벌시암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는데 알 수가 없다.

현재 길로 이용되는 곳은 길이 아니었던 곳이다.

경지정리 하면서 마을회관에서 이어지기 좋게 이어진 건지

아님 원래 있었던 길을 정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 기억 속엔 길이 아니었던 곳이고

어린 개집애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조잘거리며 머리 위에

빨래 그릇을 이고 다니던 그 길은 모정을 지나 산모퉁이를 지나

그렇게 길 어느 만큼 을 가다 보면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벌시암이 있었다.

아무리 빨래를 많이 하고,

아무리 더러운 빨래를 빨고

아무리 많은 비눗물과 흙탕물을 풀어내어도

다음날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볼 정도로 물이 맑아지곤 했었다.

어제 빨래하다가 놓인 양말짝이며 발 씻다가 가라앉은 고무신 한 짝도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마르지 않는 그 퐁퐁 솟아오르던 물은 어디로 갔을까?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일부러 파 놓은 샘이 아니었으니 그대로 놓아두었더라면

지금도 맑은 물이 퐁퐁 솟아오른 텐데 말이다.

경지정리 되어 네모 반듯한 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란히 한 듯 정렬해 있어서 

옛 모습을 찾을 수도 없는데

나는 여전히 추억 속의 그 길을 찾아보고 그 새암을 찾고 있다.

아카시아 꽃 따러 누비던  야산도

다람쥐처럼 겁 없이 타고 놀던 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뒷산도 이미 옛 모습은 아니지만

여기는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내 추억이 흐릿한 흑백사진처럼 꽉 박혀 있다.

함께 뛰 놀던 친구도 언니들 동생들도 없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 그들의 편의에 따라오고 가며

추억을 더듬겠지.

금세 왔다가 금새 가야 했을 때는 추억이고 뭐고 떠올릴 틈이 없었는데

시간이 여유로우니 묵혀진 앨범 펼친 듯 추억이 아롱이다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