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2023. 4. 6. 18:55

비 내리는 날보다 꾸물 거리는 날이 더 늘어진다.

엄마는 오전에 마을회관에서 농협 자담회 한다고 가셔서 저녁까지

드시고 오실 모양이다.

다행이다. 혼자 우두커니 방구석 지키고 있지 않아서

나이 들수록 나 살던 곳 익숙한 골목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얼마나 외로울까 싶다.

나야..

완전 휴가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은 날 있었다.

방 문 열면 하루 온종일 거실 소파에 앉아서 온 집안을 텔레비전 소리에

가두어 놓으시는 아버님

밥상 앞에만 앉으면 뭐 오늘은 잘못 된 것 없나부터 살피고 숟가락 들면서부터

한 마디씩 하시는 어머니

내편인 줄 알았던 남자의 모르쇠..

그리고 철딱서니 없지만 눈치만 빨라져 가는 아이들..

그때 내 소원은 혼자였다.

단 하루만이라도 정말 딱 하루만이라도 혼자 있었으면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안하고 멍 때릴 수 있는 그 하루가 그렇게 절실했는데..

지금은 사진 한 장으로 남으신 아버님 그리고 더 애기가 되어 가시는 어머니

모르쇠에서 남의 편이 되더니 내 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우리 집 남자..

다 컸다고 엄마 챙기는 큰 넘 멀리 있는 둘째 넘..

그래 이래도 되나 싶을만치 편안해졌다.

그렇게 악하게 살지도 않았지만 착하게 살지도 않았다.

어느 만큼은 피해자? 코스프레해 가며 내 삐뚤어진 행동들을 정당화시키기도 했고

골목을 떠도는 먼지처럼 뒹굴어 다니는 나에 대한 소문들을 바라 잡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만큼은 또 사실이고.. 내가 아무리 바로 잡으려 애쓴다고 해도

사람들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떠들고 싶은대로 떠드는 거더라고...

물론 나도 그렇겠지

그렇게 그렇게 많이도 망가졌다.

몸도 마음도... 마음이 회복되는 데에는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오늘... 우리 집 설계도 수정본을 받았다.

쪼끔 더 의견을 추가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데 모르지 살다 보면 또 어느 부분

불편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생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아이 말처럼 엄마! 저 설계도의 절반만 고쳐도도 굿이야~ 하는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아니고.. 그냥.. 좀

삐딱해진 내 몸 바로 세운다 다짐하고 삐딱해진 내 시선 바로 세워야지 싶다.

내 인생에 참 감사한 날들이다.

아침 눈 뜨는 게 제일 싫었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나... 싶을 만치 

인생이 고맙다.

오늘 새 집 설계도 수정본 받고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