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비가 내렸나 봐
밤에 비가 내렸나 봐
창문에 빗물이 또록또록 맺혀 있길래 내다보니 단지 내 산책로에 나무들이 푸릇푸릇이다.
방충망까지 열어 손을 내밀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빗물의 여부를 살피니
비는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밀당의 귀재
비 오는구나 미소 지을까 보아서
슬그머니 왔다가 아닌 척 가 버렸다.
안 그래도 엊저녁에 아들이랑 늦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엄마 집에 가면... 알람하나 사야겠다면서..
폰 알람 되잖어했더니 폰은 옆에 있어서 혹시 끄고 자 버릴까 봐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어쨌든 알람 끄러 일어나야 하니까
일아나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했는데 늦잠을 잘 뻔했다.
요즘은 어김없이 다섯 시 좀 넘으면 눈이 떠진다.
나이가 들어 잠이 없어진 탓인지 몸이 편한 탓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일어나서 그 시간에 움직일 리 절대 없는 김여사이기에
뒤척이거나 폰을 좀 들여다보다가 설핏 잠이 들었는데..
전화 진동음 소리에 파르르 눈을 떴다.
여섯 시 오십 분..
남편이다.
아................ 당신 전화 아니었으면 늦잠 잤어..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니 날은 흐리고... 거기다 블라인드까지 내려져 있던 덕에
늦잠이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오늘 아침은 빵을 먹기로 했어서..
빵과 우유를 챙겨주고..
출근하는 거 보고 나서 잠시 소파에 들어 누워 흐린 창밖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열었다.
비 묻은 바람이 좋다.
비는 가 버렸지만 비가 적셔놓고 간 바람이 살근살근 집안으로 들어와
가만히 주변을 맴도는 이 느낌이 참 좋다..
씻고 커피 한잔에 빵?
먹고 씻을까? 하다가 씻고 나놔
접시에 예쁘게 담은 빵과 머그에 가득 채운 커피를 쟁반에 갇혀 들고
소파에 앉으면서
커피를 쏟았다. 이런..
내 손에 흘러내린 커피보다 새로 구입한 아들의 소파가 상할까 봐서
벌떡 일어나
휴지로 아니 아니 행주로... 서둘러 닦고 또 닦고...
다행히 소파는 멀쩡한데 내 손목이 쓰릿쓰릿하다..
쟁반 덕분에 많이 쏟아지지는 않아서...
이런..
그래서 안 하던 짓 하면 안 되는 건가 봐
그냥 접시하나 커피하나 달랑 양손에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먹었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뭔 얌전한 척이라고 찰랑 거리는 커피를 쟁반에 받쳐서는...
흐..
소파보다 푸대접받은 내 손목은
찬물로 샤워해 주고 연고 좀 발라 주었더니 아직은 잠잠하네
아............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네...
차 고요하다..
묵직할 만큼 고요하다 싶었는데
멀리 저 아래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가 듣기 좋은 흐린 하늘이 가득한
비가 예보되어 있는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