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엔 한계절 앞서가네

꽃집에 갔다.
아니 꽃집이라기에는 농장 같은..
남편 모임에서 화분을 주문할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대신 갔는데
거긴 벌써 봄이 한창이더라고.
아니.. 5월에 피는 매발톱도 이미 피었고,
달리아도 그새 꽃대를 올리고 있더라고..
델피늄에 캄파눌라에 이름이 중얼거려지는 꽃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까지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지 뭐야.
우선 사야 할 화분을 하나 고르고...
취임식에는 대부분 비슷한 화분들이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해.
아.. 글쎄 수국도 벌써 환하게 피었는데
여기가 봄 아니 벌써 초여름까지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계절을 잊은 꽃들이 예쁘고 화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계절에 맞춰 피어주는 게 기다리는 재미도
있고 한데.. 싶기도 했어.
물론 꽃을 볼 땐 아무 생각 없이 좋기만 했지만 말이야.
이것저것 구입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날도 춥고...
거실에 두기에는 한계가 있고 해서 캄파눌라랑 카랑코에를 사들고 왔는데
카랑코에 꽃이 종모양이야.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보고 주문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는데
거기 있는 거야 그래서 들고 왔어.
두 개에 만원..
사실 식물로 기분 내는 데에는 욕심부리지 않으면
그렇게 큰 비용이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오래 살려 두느냐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장바구니에 한 일주일 전부터 담아둔 식물이 몇 개 있었는데
주문하지 못한 건.. 그래.. 장소의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요즘 남편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불필요한 것에 소비하는 게 좀 조심스러워.
그렇다고 엄청 절약하고 사는 건 아니고,
남편이 뭐라 하는 것도 아니기는 한데..
혼자 나가서 고생한다 싶어서 좀 신경이 쓰여.
오늘도 여덟 시가 다 되어 집에 왔거든.
피곤할 텐데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이 사람한테서 짜증이라는 단어가 지워졌나 봐.
그 단어를 지우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했을 것이고
노력하고 있겠지.
그래서 더 미안해.
차라리 그냥 평범하게 대했으면 좋겠는데....
뭔가.. 모르겠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남편이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늘 불만이었었는데
말만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면서 고마우면서도 뭔가 안타까워.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뀐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싶지만.....
ㅎ..
그럼 누구겠어.
그냥 고마워하면 되는데 말이야...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엄마랑 통화하면서 이야기했더니
뭐 하러 출근한다 하느냐고 엄마 걱정하시는데...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는 남편이 얼굴이 얼어서 빨개져서
퇴근했더라고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거 듣고는..
그런 말 하지 말라 하잖아. 엄마걱정하신다고..
그렇지..
며칠 전에 다짐했었는데..
엄마한테는 걱정도 근심도 내려 좋지 않고 좋은 이야기만 해야겠다고 말이야.
그새 까먹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었더라고...
엄마는 엄마의 봄을 살아가고 계시네.
어제는 토방에 앉아서 쪽파를 다듬으시더니
오늘은 집안을 쓸고 닦고 하셨다고..
어지간해지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움직여야 하는데 건 맞는데..
그 정도가 어느 만큼 이어야 하는지는
엄마가 제일 잘 아시겠지.
엄마네 내게 달빛 같기도 햇살 같기도 그래..
늘 거기 그렇게 햇살같이 달빛같이 계셔 주셨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