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맛있다.
오늘도 열심히 떴다.
잠깐 쉬어 가기도 했지만
아침 여섯 시도 안 되어 엉덩이 붙이고 앉아
뜨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하면 정말이지
입이 석자는 나왔을 법 한 시간이다.
열심히 뜬만큼 손목이 아프다 한다.
그래도 재미지다.
원래 소품을 뜨는 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이 실도 작은 인형을 떠서 열쇠고리로 만들려고 샀던 것 같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런데 서너 개 뜨고 말았다.
실 끊고 연결하고 하는 것도 번거롭고
완성되는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건 좋은데
그냥.. 뭔가 쫌 답답한 느낌?
어쩌면 내가 코바늘에 더 재미를 붙이지 못한 탓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무튼..
인형이 되려고 우리 집에 왔던 실들은 대부분 멍뭉이 옷이
되었고.
면이 좋아서 오래도록 잘 입었다.
멍뭉이가 살이 찌기 전까지는..
지금은 자꾸 빨아서 줄어든 것도 있지만
멍뭉이도 나잇살이라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
대부분 배꼽티가 되어있다.
내일까지만 몇 개 더 뜨고 나면 면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 같다.
저녁에 고구마순에 된장을 넣고 지짐을 했다.
그래 이 맛이야~ 하는 말까지는 안 나왔지만
너무 맛나게 잘 먹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여름에도 늘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추 따는 일 때문에 더 바쁘기도 했던 것 같고
모든 것들이 엄마 손에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바쁘셨던 것은 아닌가 싶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여름날이면..
넓지도 않은 방바닥 절반에는 고추가 널려 있었고,
엄마는 아궁이에 불까지 때셨다. 속수무책 내리는 비에
썩어 가는 고추를 방바닥에서라도 말리기 위함이었다.
매운 내는 펄펄 나고..
안 그래도 더운데 방바닥은 쩔쩔 끓고..
어쩌다 고추에서 벌레라도 한 마리 기어 나와
방바닥을 활보할라치면
안 그래도 무너져 가는 초가집이 들썩일 만큼
비명을 질러대고는 했었다.
그때는 비닐하우스라는 개념도 없었고
오로지 태양으로 말리는 시기였으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들어갔을지..
가끔 텃밭에서 고추를 따서 그 양이 적어 건조기에 놓지 못하고
마당에 널어놓을라 치면.. 이게 마르는 건지 뭔지..
예전에는 어찌 햇살만 믿고 고추를 맡겼었나 싶은 거다.
그렇게 엄마의 바쁜 일상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들었던 것 같다.
논두렁을 돌아다니며 우렁도 잡아다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해감시켜 삶아서 바늘로
살만 발라놓고..
밭에 가서 오이랑 가지도 따다 놓고...
저기 멀리 앞마골? 고구마 밭에 가서 고구마 순을 뜯어 와서는
언니랑 동생이랑 둘러앉아 껍질을 벗겨놓고는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그 고구마순을 가지고 김치도 만들고
된장 넣고 끓이기도 했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고구마순 김치는 쉽게 익어 터졌고..
새콤하다 못해 시큼한 고구마순 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 가는 일이 참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 고구마순 김치..
어제도 먹었는데 오늘도 먹고 있고 아마 내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
집에 넉넉한 거라고는 고구마순 밖에 없었던 그때...
그렇게 질려하면서도 맛나게 밥 한 공기 뚝딱 했던 그 고구마순이
이 여름에 별미라는 걸
예전에도 알았지만 요즘 절절히 느끼고 있다.
추억이 있어 그런가..
고구마순 껍질 벗기느라 손톱 밑이 새카매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던 촌닭처럼 뛰어다니며 놀던 그 시절의
추억이 잔뜩 묻어있는 그 김치를
그 된장 지짐을 그 나물을 나는 좋아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직접 담아주시고는 했는데..
내가 담아 먹기는 하는데 엄마 손맛이 안 난다..
엄마한테 물어서 만드는데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엄마 음식에는 엄마의 정성과 나의 추억이 곁들여져 있어서
더 맛있는 지도..
고구마순은 여름 내내 내 가장 좋아하는 반찬거리가
되었다.
고구마보다 더 좋은 고구마순을 위해서 고구마를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