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엄마네 마당에서 꺾어 온 천일홍은 아이 방 창가 근처에 신문지를 깔고
이틀을 말렸는데 색이 곱지 않았다.
날은 덥고.. 아침에는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문득 고추 말리느라 일하고 있는 건조기 생각이 났다.
어차피 빈 채반이 있는데 싶어서
가져다 넣었다.
몇 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고 해서 말렸다.
예쁘다.
자연건조 시키려면 일주일에서 열흘은 말려야 하는데
아주 잘 말랐다.
생화느낌의 그 싱그러운 색은 아니기는 하지만 예쁘다.
바스락.. 잘못 만지만 꽃잎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릴지도 몰라
꽃에서 매운 내가 좀 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냄새에 예민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정도이지만
예민한 사람은 꽃에서 매운 내가 나~ 할 수도 있겠다.
왜 건조기에 고추나 멍뭉이 간식 말릴 생각만 하고
꽃 말릴 생각은 못했을까?
지난번 내 생일 때 받는 꽃들이 마악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에는 꽃 선물 받으면 말려야지 그러고 있다.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피노키오는 저리 가라로
늘 말로만 비였기 때문이다.
날이 흐려지고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지길래
화분들을 비마중 시키고 속을 샘 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우수수수수
쏟아진다.
그래 이렇게 한 시간만 내려주라.. 부탁하듯 중얼거리고
포치에 앉아 한참이나 비 구경을 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마당에 내리 꽂히면서 튕겨져 오르며 만들어 내는
동그라미를 보며..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흥얼거리게 된다.
비가 내리면 그에 연관된 노래를 들을 때가 많은데도
내 입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거나 폭우가 내리면...
빗물 빗물.. 빗물.. 하기보다는
동그라미.... 를 흥얼거리고 있다.
텃밭 고추 고랑에도 물이 고이고
꽃밭에도 마당에도 마당에 마중 나간 화분들에도
비는 거칠게 또는 부드럽게 한참을 내려 주었다.
이 비가.. 목마른 많은 것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약비였음이다.
비가 내려서 그런가..
풀벌레 소리가 더 처량하게 들리네..
이제 비도 내렸으니
여름을 슬그머니 밀어 내고
가을이 성큼성큼 들어왔으면 좋겠다.
물론...
햇살은 여전히 바쁘겠지만 그래도 9월이
중순인데 기온이 35도는 아니지 않냐고...
여름이 여름다웠으니
가을은 또 가을다워야지 않겠니.
오는 듯 가버리는 서운한 일은 없길 바랄게 가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