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괜찮은 오늘 2024

10월 첫 날 비가 내린다.

그냥. . 2024. 10. 1. 15:47
비가 내린다.

10월의 첫날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냥 흐림이다.
먹구름이 잉크 퍼지듯 그러지도 않고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
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회색빛 하늘이 움직임도 없이 비를 내린다.
그래.. 그랬던 것 같기는 하다.
흐르는 짙은 구름에는 오히려 진득한 비가 담겨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잠시 쏟아졌을지는 모르지만..
아침에만 해도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모자까지 눌러쓰고
꽃밭에서 잡초를 골라냈다.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옮기고 싶었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와서 조심스럽게 가능한 뿌리가 상하지 않기를 바라며
삽으로 깊어 떠서 자리를 옮겨 주었다.
목단도 작약도..그리고 하늘바라기도 
아침저녁으로는 어디 꽁꽁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던 모기가
주린 배 채우려고 내게 몰려들었다.
그래봐야 힘 빠진 모기의 주둥아리..
그럼에도 가렵기는 마찬가지다.
열심히 더 열심히 움직였던 건
정신은 이미 멀쩡한데 게으름에 발목 잡혀있는 몸뚱이를
흔들어 깨우기에는 뭔가 격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싶었다.
커피를 줘도 바람과 앉아 있어도 늘어나는 게으름의 몸짓은
그냥 게으름일 뿐.. 타파하기 위한 몸부림. 삽질 호미질..
그리고 잡초랑 힘겨루기
결국 내가 이겼다
게으름에게서도 잡초랑 힘겨루기에서도 
비는 내리기 시작했고...
 자리를 옮긴 아이들이 원래 그 자리에 살았던 것처럼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몸살 하지 않고..
이 비가 처방약 내지는 링거 정도는 되어 줄 것 같다.
비워내기를 정말 잘했어.
많이 망설이고 많이 아쉬웠지만 비워진 곳은 어떻게든
채워지게 되어 있고 잘 몰라서 데려온 아이들은 잘못이 없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지내기 힘들다면 
더 좋은 환경에 더 좋은 곳에 가서  뿌리내리고 사는 것이 훨씬 나아. 
그렇지..
예전에는 꽃만을 중요하게 봤었는데
이제는 꽃도.. 그 생육환경도 키도 살펴보고 
들여야지 싶다. 그럼 실수할 확률이 줄어들겠지.
여름에 사라진 아이들 중 다시 들여놓고 싶은 아이들도
차츰 데려와야지.
10월 비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긴 바지에 양말에 카디건까지 걸쳤는데도 싸아하다.
따듯한.. 아니 뜨거운 물에 단백질 파우더를 물에 녹여
마시고 있다.
유리 컵을 손난로처럼 감싸 안고 내려다보는 세상에는
가만가만 비가 내린다.
곱게도 내려서 비가 내리는지 확인을 하려면 웅덩이를 바라 
보아야 한다.
비 웅덩이는 거짓말을 못해.
동글동글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리는 비가 참 좋은 가을이다.
촉촉이 젖은 잡초가 말끔히 정리된 꽃밭이 내려다 보인다.
분홍빛 프록스 꽃송이에 벌 한마리 날아와 앉은 걸 보니 비가 잠깐
쉬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 소리와
실시간으로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
갑자기 가을이 훅하고 들어왔다.
내 그럴 줄 알았어.
10월은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다니까?
9월 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
10월 이 어감 좋은 느낌의 한 달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내 남편이
내 가족들이..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