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1

우리집 남자를

그냥. . 2011. 2. 9. 22:15

우리집 남자를 처음 만났을때는

장난기 많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하고는 참 많이 다르고 활력 있구나...싶어서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하면서는

이남자의 외향적인 성격은 부단히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뜻 언뜻 비춰지는 소심함과, 무뚝함이 느껴졌지만

그것마져도 그때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나서 1년도 안지나서

내가 알고 있던 그사람은 어디 가고 다른 사람이 여기 있을까..

땅을치고 후회하고, 발등을 밤마다 찍어대며 후회하며

눈물 흘렸지만 방법은 없었다.

내가 그랬던것처럼 우리집 남자도 내게서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쯤은 싸우고 울고 또 싸우고 살았다.

정도 들었다.

미운정이 더 무섭다고 하던가..

술을 밥처럼 먹고, 집에 들어와야 맘이 편치 않다는 남자를

뭐가 좋다고 날마다 기다리며 살았는지..

지금 같아서는 열두번도 더 보따리를 쌌을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댈 사람은 그남자 밖에 없었던 까닭이였던 게지.

 

이제 같은곳을 바라보며 함께 새치 걱정해주는 중년..

어머니 걱정도, 아이들 걱정도,

집안 크고 작은 문제에서 발뒤꿈치 갈라져서 아프다는 사소한 문제까지

함께 이야기 하며 허허 웃다가고 꾁 소리 지르고,

타인보다 밉다가도 안쓰러움에 가슴 찡하게 만드는 그런..

어느새 그런 사이가 되었다.

세월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어떻게든 지지고 볶고 견디고 살았으니 그늘보다는 햇살이

더 많은 초가을날 같지 않은가 싶다.

 

오늘 늦은 오후

카센터 가서 차 공기압 체크하고, 엔진오일 가는 잠깐 사이

우리집 남자 없으면 난 저런거 혼자 돌아다니며 챙길수 있을까...잠깐 생각이 스쳤다.

그 사무실에서 우리집 남자는 신문을 보고,

나는 혼자 놀기의 진수에 빠져있는 티비하고 놀아주고 있었다.

신문을 보던 우리집 남자가 어떤 기사를 보며 나를 부른다.

'이것 좀 봐봐....어쩌고 저쩌고.................'

'자갸. 근데 나는 그 기사보다 왜 안경을 그렇게 쓰고 있어.

그게 더 신경이 쓰이는데' 하고 물었다.

남편은 안경을 머리에도 아니고 이마에 걸쳐놓고 맨눈으로 신문을

보고 있었던 거다.

'어....이넘의 안경이 먼곳에 있는건 잘 보이는데 이런 작은 글씨는

안보인당게. '

'그렇게 쓰지마아. 차라리 벗어 놓던지.'

'뭐 어때!  '아무렇지도 않은듯 똑같은 위치에 안경을 걸쳐놓고는

계속해서 신문을 들여다 본다.

언제 저렇게 복잡 미묘한 시력이 찾아 들었을까?

시력도 별루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그덕에 못생긴 마누라가 더 이뻐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보기에는 참 팔팔하고 젊어 보이는데 노안이라니..

맘이 싸아 해지는건..

내게도 남편에게 찾아든 그런 증세가 스멀스멀 느껴지는 까닭에

동변상련의 느낌인지도 모르겠지만

안쓰럽다.

바쁘지 않은 날

안과 가서 시력체크하고, 다초점랜즈로 바꿔줘야겠다.

아주아주 좋은걸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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