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더위가 더 힘겨운 법이라고 했던가
덥다는 말이 어느 날부턴가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내리더니
날마다 덥다한다.
큰 아이랑 마트 가서 장을 봐 가지고 오는데 제법 덥더라고
날이 더워 그런지 차 안이 후끈한 것이 속이 울렁거린다.
아침을 건너뛴 탓이리라.
이제 한 끼만 건너뛰어도 바로 티가 난다.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 모양이다.
다섯 시 반 넘어 국수랑 산책을 하는데 바람이 참 좋다.
좋은 바람에 멀리 좀 나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 저녁은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 하니 준비할 것도 있고 해서 동네를 큰 바퀴로
돌기로 했다.
늘 다니는 길에서 샛길을 들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며 걸으면 한 시간은 족히
걸을 수 있으니 오늘 같은 날 딱이다.
빈 논들에 물이 채워지고, 여린 모들이 물속에서 찰랑인다.
논에 갇힌 물들이 찰랑이는 느낌이 아니라 그 속에 자리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린 모들이 찰랑찰랑 거리며 의싸의싸 하는 거 같이 보인다.
좀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본 마을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없던 도로도 생기고, 흙길에서 시멘트 포장으로 아스팔트로 바뀐 골목..
나 시집올 때 있었던 건물들보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더 많은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도 이 동네에서는 어르신 정도는 되겠구나.
하긴 요 몇 년 사이 여기저기서 이사와 새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참 많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도 많고,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한 20년쯤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봄이 가고, 모가 자라 초록의 바다를 이루는 날들이 장마와 함께 찾아오면
올여름도 절정에 이르겠지.
올 여름도 건강하게 지금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아무 일 없이 조금은 나른하고 지루한 듯이 그렇게...
내 인생은 스릴 모드가 아닌 슬로우 모드로 작동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