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서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을 만큼
많은 날들을 옷걸이에 매달려 있던 남편의 양복을 꺼냈다.
하나 구입하시지.. 했다가 안돼서
내가 하나 사줄까..해도 안돼길래
하나 사입자 자리도 자리이고 당신 양복 너무 오래됐잖아 해도
안 너머 오길래
당신 동생들 앞에서 초라해 보이는 거 싫타니까 협박을 해도
꿋꿋해서 포기 했다.
그래 뭐 양복 입을 일이 있어야 말이지
일 년에 한 번도 없는 일을 위해서 잠깐 외사촌 결혼식장 방문
몇 시간을 위해서 양복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우리 집 남자의 말에
그래 그렇기는 하지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시골에 살다 보니 정장 입을 일 없고, 그렇다고 점잖은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양복만 사면 되는 게 아니잖아. 거기에 맞춰 와이셔츠도 넥타이도...
그래서 와이셔츠라도 하나 사자고 했더니
옷장 한 구석에서 캐캐 묵은 와이셔츠 한 장을 꺼낸다.
이거 입으면 되겠네.. 하고,,
그건 아니 야. 와이셔츠는 얼마 안 하니까 하나 사자.. 탈색돼서 누렇잖아. 했더니
아니란다.
저 고집을 누가 말리겠는가.
큰아이 와이셔츠 남편이 맞으면 한번 빌려 입히는 걸로 마음 바꿨다.
나도 정장 차리 입고 나갈 일이 없다.
아예 없다.
아이들 어릴 적에는 학부모 총회라도 입고 나갔었는데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이 다 시골 촌부들이니 입는 거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서
너무 편하고 좋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식장 갈 일이 생기니
아 물론 그전에도 결혼식 갈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꿋꿋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가지 않아도
되거나 날이 추워 위에 코트 하나 걸치거나 하면 됐었는데 이번은 아닌 것 같아
하나 살까.. 했었다.
며칠 전
세 남자와 나갔을 적에 작은 넘 옷 사고 내 옷 사러 들어갔는데
저녁에 출근해야 하는 큰 넘 신경 쓰여서 디피 되어 있는 것들 두벌 골라 입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입어보고 아들에게 물어보니
첫마디가 엄마 왜 이렇게 옷이 커? 였다. 두엄 다..
그거야 엄마 탓이지.
바지야 줄이면 돼지만 재킷은 줄이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싶어 그냥 두엄이 똑같이 괜찮다는 걸로 고르고
바지는 일주일 후에 작은 사이즈로 들어오면 그때 와서 수선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하고 계산하려는데... 흥미 가격이 오십만 원이 다 된다.
아니다 싶어
왜 이리 비싸요? 했더니 신상이라 그렇단다.
아니 옷은 몸에 맞지도 않고, 바지는 일주일 있다가 와서 수선해야 하는데
무슨... 싶은 생각이
남편이 먼저 앞서서 나가 버리고
나도 아... 죄송합니다. 가격을 먼저 물었어야는데 너무 비싸네요. 옷도 큰데
하면서 나와 버렸다.
뒤통수가 따갑기는 했지만.. 십 프로 빼준다며 볼맨 소리를 하는 주인장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잠깐 입으려고.. 그날 입고 또 언제 입을지 모르는 옷을
그렇게나 주고 사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오래전에 사서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봄가을 차려입고 가야 하는 자리에 입고 가던
그 옷을 꺼내 놨다.
다행히도
어깨는 맞고 바지도 뭐 내 몸에 맞게 줄여놓았던 거라 주먹이 두 개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더 이상 줄이면 옷 모양이 안 난다고 했던지라
골반에 걸쳐 내려가지는 않으니
그럭저럭 입기로 했다.
멋쟁이 막내 동서랑,
부잣집 마나님 둘째 동서에게 기죽기 싫어서
옷 하나 장만하려 했는데 옷 때문에 기죽을 일이면
내 자존감은 이미 바닥인 게지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괜찮다고... 어차피 옷이 맞지도 않았다고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뭐 아무 일 아니네.
이제 와서 가만 생각해보니
그 구입하려고 했던 그 재킷.. 그것도 안 그래도 클 텐데 한치수 큰 거 아니었나 싶다.
바지가 작은 게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정장인데 한벌로 파는 옷인데 위아래 사이즈 따로따로 팔았을 리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옷이 왜 이리 커? 소리가 두넘에게서 그리고 남편에게서까지 동시에 나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