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생강차 한잔

그냥. . 2020. 12. 21. 21:18

한나절 일을 끝내고 들어와 들어와 점심을 먹는데 

좀 그랬다.

설거지를 하고 나오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젤 먼저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리고 속이 좀 답답했어.

그래도 국수 데리고 산책도 가고...

에어 프라이기에 수육도 해 먹어 보자 했으니 해야 하고,

마트도 다녀왔다.

이것저것 왜 그렇게 살 것이 많은지..

설탕 1kg , 콩나물 한 봉지, 키친타월, 주방세제, 갈치 한팩

간고등어 한 손 등등 등등..... 계산대에 올려진 것들이 

찍어 내놓은 금액은 십육만 원이 넘었다.

다시 정육점에 들어가 목살로 세근 사고~ 

집에 오니 다섯 시 반..

손 씻고, 목살 허브솔트 뿌려 간부터 해 놓고,

압력솥에 쌀 씻어 가스에 올리고, 묵은지에 마지막 남은 감자 몇 개 깎아 

넣고 낼 아침 먹을 갈치 올려놓고,

에어 프라이기에 목살을 넣었다.

한번 뒤집고, 또 한 번 뒤집고...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서 

한토막 잘라 보고... 양파 썰오 같이 돌리고.....

김치냉장고에 어제 담근 김치처럼 쌩쌩한 엄마 김치 길게 썰어 놓고,

배추 반포기 잘라 씻어 놓고,

양념 고추장이랑, 새우젓이랑 덩치가 작은 잘 익은  수육만 먼저 썰어 놓고 밥을 차렸다.

수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큰아이는 훨씬 맛나다 하고,

다들 잘 먹는데 나는 속이 답답하여 자꾸 한숨을 쉬게 된다.

왜?

아니 그냥 지금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렇게 서성이면서 비워져 가는 수육 접시를 가득 채워 놓고 앉았다.

먹어 보라는 말 한마디 없이 잘들 먹는다.

아들 넘만 눈치를 살피고, 왜 속이 또 안 좋아? 작은 넘이 묻고,

낮에 퇴근해 자고 나온 큰아이는 입맛이 없다며 금세 자리를 떴는데..

새로 꺼내놓은 김치가 작아서 점심때 먹던 김치 꺼내서 여기다 먹으라 했더니

새로 꺼내 달라는 우리 집 남자에 귀찮아. 했더니 처음부터 많이 썰어놓지 한다.

어중간했어. 남으면 버려야 하잖아. 하는데 작은아이 엄마 아프다는데 그냥 드시지... 한다.

일어나며 새로 꺼내 줄게 했더니 괜찮다 괜찮다 하는 남자.

이미 나는 일어났고,, 김치냉장고 문은 열렸고, 김치를 꺼냈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 이렇게 귀찮을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 집 남자 소주 한잔 기울이며 말이 많다.

먹어 보란 말은 안 하고..

물론 알지 김여서 속 안 좋을 때 먹으면 직방이라는 거...

옆 동네 이장이 어떻고, 저떻고,

옆 옆 동네 이장이 바뀌었는데 어떻고 저떻고...

저... 지난번에 코로나 나온 동네 이장님은 바뀌었는데 전 이장님이

속이 상하 신지 전화를 안 받네 어쩌네 하시고.... 말씀이 장황하시다.

난 속이 답답하여 자꾸 한 숨이 나오고...

에어 프라이기에 구워진 수육은 맛이 좋았지만 그 기름 묻은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양새가 꺽정스럽기만 한 나는..

이제 그만 얼른 끝내고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술 한잔 들어가신 우리 집 남자는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나...... 는 얼른 끝내고 쉬고 싶은데....

대답도 시원찮고 눈도 안 마주쳐주고 그랬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나간다.

작은 넘은 예전 먹던 수육이 더 맛나다 하고, 남편도 그렇다 하는데

수육 싫어하는 큰 넘이 구운 게 더 맛나다니 앞으로도 쭈우욱 에어 프라이기에

굽지 않을까 싶다.

기름 뒤집어쓴 에어 프라이기 닦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나도 굽는 게 더 낫네.

암튼 지간에 우리 집 남자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마누라에게 이러쿵저러쿵 해 댄 것이 미안했는지

엄마랑 통화를 하고.....

나는 퐁퐁이 듬뿍 묻혀 뜨끈한 물로 그릇들의 기름기를 닦아 냈다.

잘 먹으니 좋기는 하다.

그런데... 갈치조림이 잘 됐는지는 모르겠어.

간도 안 봤는데... 갈치가 좋았으니 맛도 좋겠지 뭐..

세탁기 돌려놓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생강차 한잔 들고 앉았는데 

생강차 덕인가 답답하던 속이 좀 가라앉았다.

우리 집 남자는 벌써 코를 골고...

국수는 침대 위 웅크리고 누워 잔다. 돌침대 뜨끈하니 데워지고 있으니 

이제 곧 사람처럼 대자로 누워 자겠지.

나...

나는...

욕심인지 모르겠는데...

딸 하나 있었음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든다.

아들들은 

남편은 

통하지 않는 여자들만의 그런 뭐 그런... 통함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난 딸도 없으니

그리고 울 엄마한테 우리 집 남자 흉볼 수도 없으니....

여기 일기장에 이렇게 툴툴 아닌 것처럼 우리 집 남자 뒷 담화를 하고 있다.

마누라 힘들어 보이면 수육에 소주 한잔이 아니고...

오늘은 내가 설거지할게... 할 수 있는 그런 아량? 배려! 그런 건

애초에 어머니 뱃속에 두고 나왔나 봐~ 흐....

배부르겠다. 귀도 간지럽고..

오늘은 여기까지.

어느새 아홉 시가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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