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북쟁이 친구가 보고 싶은 밤이다.
그랬다.
너희는 윗집 우리는 아랫집
너희 집은 윗집이었던 것뿐만 아니라 아랫집인 우리 집 하고는
참 많이 달랐었어.
빨간 치마에 초록 저고리를 입고 신행 온 언니를 둔 너는 부잣집
막내딸래미였고, 특히 너희 집에는
백설공주보다 더 이쁜 눈꽃보다도 더 하얗고 고운 드레스를 입은
유리 상자 속 공주가 너무너무 너무 부러웠었어.
나도 그 인형을 너무너무 갖고 싶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엄마한테 엄마! 숙이네 집에 있는 인형 봤어. 나도 그 인형
사 주면 안 돼? 라른 말을 하지 않았지..
너희 집에 있는 텔레비전이, 새카만 전화기가 참 신기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 없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
왜 그 어린 나이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아마도 우리 집 그래 집 때문이었던 것 같아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새마을 운동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초가집이
사라지고 슬레이트 집에 대세였는데 우리 집은 여전히 초가집이었고,
엄마는 아빠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사는 게 참 힘들어 보였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감히 엄마에게 엄마 나 인형 갖고 싶어, 라는 말을
할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
빈곤의 실체가 어린 눈에도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던게지.
친구야.
잘 지내지!
너는 여전히 잘 살고 있겠지. 나 버벅 거리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울과 친구 하며 놀고 있을 때
너는 뜬금없이 전화해서 나랑 쎄쎄쎄 하고 놀아 주었지
너랑 놀고 나면 나는 기분이 참 좋았어.
바닥을 기던 기분이 몸에 기운이 어느 만큼은 충전되는 것 같았어.
너도
쉬운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 것을 너무 잘 알지만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니 삶에 맞서 살았고
너는 나보다 더 훨씬 현명하게 너를 지켰잖아.
그런 너를 나는 그저 부럽게만 너니까 가능한 일이려니 하고
살았지.
그러던 네가 그랬잖아.
갱년기가 너무 너~~~ 무 힘이 든다고..
온몸 뼈마디가 다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물론 내가 겪어 본 일이 아니니까..
너는 그것도 현명하게 대처했지.
수영도 열심히 했고, 에어로빅도 한다고 했어.
어느 때부터인가는 남편 가게에서 벗어나 너만의 일을 시작했다고
했었지.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시작햇던 것 같아. 그리고 어린이집 주방이모
그리고 어느 날은 학원 버스 도우미를 한다고 했었지.
아.. 그랬어. 여성귀가 안전요원? 인가 뭐 그런 일도 한다고 했어.
그렇게 갱년기를 이겨냈다고..
해도 해도 티도 안나는 남편 뒤치닥 거리 밖에 안 되는 가게 일...
집안일에서 벗어나
니 손으로 돈을 벌고 니 일을 가지고, 너만의 시간을 가지니
너무너무 좋더라고
시댁에 김장하러 가는 것도 죽어도 못 끊을 거 같았는데
한 번 안 가고 나니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었지.
그러면서 내게 그랬잖아.
니가 괜찮지 않으면 네가 답답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벗어나
누구도 너랑 똑같이 느끼지 않아! 하고..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말이야..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더라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냐고!
허.. 우습지도 않아 나 악녀야 악녀..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싶을만치
그렇지만 거기서 이유를 찾고 핑계를 찾아서 나를 정당화 하지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홀가분한 것은 아니니
바보야 바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세상 멍청이..
요즘 말이야..
너 갱년기 어때>=
나 있지.. 갱년 긴가?
그냥 몸이 망가진 걸까?
아님.. 엄살이 심한 건가..
그것도 아님 싫다 싫다 하면서 울 시엄니 닮아가는 걸까..
온 뼈마디가 다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움직이는데
시어머니 와서 재는 왜 저렇게 한시도 안 앉아 있다냐 했다던...
그 말이 자꾸 생각이 나는 거 있지.
친구야...
오늘은 우리 집 남자가 술 한잔 거하게 하고 와서 늘어지게 잔다.
안 그럼 벌써 몇 번이고 잠결에 잠꼬대처럼 안 자고 뭐하냐고 잔소리했겠지.
그렇게 우리집 남자는 나를 챙기고 간섭하면서 사랑이고 걱정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있지 여전히 술냄새가 적응이 안돼
술 먹은 말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흐트러진 음표처럼 정신 사납고.
술 좋아하는 사람하고 이만큼 살았으면
그만 적응하거나 포기할 만도 한데 나도 참 어지간히
고집불통이거나 미련하지..
그러면서 나도 캔 하나 정도는 그만이니 이게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친구.
비바람에 낙뢰보다 더 요란하게 흔들어대던 너희 집 양철 대문이
텔레비전도 있고 전화기도 있고 공주님 인형도 있는 너희 집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더 너희 부모님의 날선 목소리가 밤 내 우리 집 낮은 담을 넘어오던 그 밤이
울 아버지 괜한 트집으로 울 엄마 눈물바람 하게 하시던
그 오싹하게 추웠던 어느 겨울밤의 추억이
왜 따듯한 방구석에 앉아 그리운 거니
친구야..
잘 살고 있지?
너랑 연락 안 한지도 아마 1년은 되어 가는 거 같다.
너를 잊은 건 아닌데
너랑 통화하면 기분이 그냥 마냥 좋아지는데
나는 왜 너를 먼저 찾지 않은 걸까?
네가... 너무... 내게... 잘해서 그래.
그래서 내가 너를 찾기가 미안한 거야.
내가 너의 기를 다 빼놓는 거 같은 기분이 좀 들기도 하거든
내게 그런 친구가 있는데 네게는 내가 그러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래도 오늘 밤은 네가 참 많이 궁금하다.
내 갱년기 증상이 자꾸 너를 더 소환하네
그래도 지금 전화하기는 너무 늦었지
늦으면 어떠냐고? 늦어도 상관 없다고 너는 말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지금이 자정 딱 2분 전이야. 이것아.
머지않은 날에 니 목소리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기적이게 나는 지금 너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숙아... 내게... 전화 좀 해 줘라 제바아아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