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날이었다.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
요즘 이런 날들이 많아진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갱년기 핑계를 대고 있다.
나 보면 저기압인 내가 남편이나 아들 기분에도 영향을 줄까 봐서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보기도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금세 또 가라앉고... 가라앉고...
그랬다. 이유도 모른 채
조용한 거는 타고난 성향 문제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기분 하고는 좀 다르다.
아들이 눈오리 집개로 눈 오리를 열 마리나 만들어 놓았다.
슬그머니 녹아내려서 형태도 없이 사라지는 눈 오리들이
사라진 자리 물자국들이 겨울 햇살이 눈 부시다가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춥다가 따듯하니 온 몸에서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
나른하기도 했다.
엄마네도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
김장 때 가고 아직 못 다녀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한 달이 지났네
다음 주는 그렇고 그다음 주에는 다녀와야지 싶다.
엄마가 은근 걱정이 늘어지시는 모양이다.
그럴 것도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망설이다가 열두 번도 더 망설이다고
질렀다.
이것은 순전히 갱년기 우울증을 위한 약 처방이다.
꿈의 뜨개바늘
사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조립식 뜨개바늘..
그런데 그 가격이 만만찮은지라..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고 해도 대체할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구입하겠지만 500원이면 사는 수십 년 동안 내려온 대나무 줄바늘이 있으니
뭐 그닥 아쉬울 일은 아니었다.
다만.. 몇 번이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기만 했다가 내려놓기를 몇 년..
한 번 사면 평생을 쓸 수도 있는 건데..
그렇지만 가성비 짱인 500원짜리 대바늘이 수도 없다.
실 사면서 덤으로 딸려 온 거, 예전에 스웨터 뜰 때는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편하다 보니 또 사고...
그렇게 대바늘이 수도 없기는 한데 그런데도 뭔가 그런 아쉬움..
그러다가 이번에 장갑 뜨면서 아무래도 좀 못마땅한 거다.
바늘과 바늘 사이의 뜨개 모양이 좀 맘에 안 들어..
그리고 대바늘로 멍뭉이 옷이나 장갑을 뜨다 보면
바늘 끝이 갈라지기도 하고 바늘이 굽기도 하고..
뭐 이런저런 핑계들이 엄동설한 처마 끝에 고드름 자라듯 자라난다..
장갑 뜰 실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내가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그 20만 원대 세트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보다 많이 아주 많이 저렴한 조립식 바늘을 장바구니에 떡하니 담았다.
그리고 또 망설임..
그렇지만 장갑은 뜨고 싶고, 장갑 뜨려면 장갑은 멍뭉이 옷보다 더 작으니
아무래도 짧은바늘이 필요하겠고..
에라 모르겠다. 질렀다.
실이랑 바늘이랑~
털장갑도 만들어지는 거 사는 게 훨씬 저렴하고 이쁠 수도 있고
멍뭉이 옷이나 이 계절에 서너 개씩 뜨면 그만인 것을
허리 아파, 등 아파, 어깨 아파 두통이야 하면서
뜨개질에 미련을 못 버릴까..
오늘부터 아파 아파는 말아야 한다.
우리 집 남자 도끼눈을 하고 그렇게 죽치고 앉아서 뜨개질만 하고 있으니
아프지~ 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잔소리하길래
당신 술 좋아하는 거 내가 잔소리하면 싫지
나도 나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면 왜 안되는데!
하며 따졌더니
아프다고나 하지 말던지 하는 거다.
그래 알았다 했으니 적당히... 해야지
집에 있는 시간..
뜨개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멍하니 앉아 있으려면
왜 그렇게 헛헛한지 모르겠어.
이것도 갱년기 탓인가.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