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2(쉬운 나이)

요즘은

그냥. . 2022. 12. 8. 23:00

요즘은 이미지 가뭄이다

꽃도 없고, 물든 나무도 없고, 노란 들판도 없고,

귀여운 멍뭉이는 미용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되어서

사진 찍으면 내 어설픈 미용 실력이 탄로난다.

그렇다고 쓸쓸한 들판을 찍고 싶지는 않다.

내 마음도 쓸쓸해질 테니까.. 

그러다 보니

뭐 찍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예전에 찍어 놓은 사진들을 탐색하고 찾아다니기도 

번거롭고..

언제부터 일기에 이미지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요즘은 함께 올릴 이미지가 없다.

 

캔맥 하나 마시고 있다.

며칠 전..

밤에 캔맥하나 마시다가 남편한테 걸렸다.

물론 들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집 남자~

술꾼~~ 밤마다 술 마시는 거 아니여하고 놀리는 데 기도 안 찼다.

내가 술꾼이면 당신은 술 도사다~ 한마디 던저줄 껄..

아니다 아니라고.. 변명만 해 대느라 웃겼다.

목줄기 쩡 하게 시원한 것을 마시고 싶지만

사실 내가 마시고 있는 맥주는 그냥 수납장에 있던

밍밍한 맥주다.

너무 차가운 맥주는 내 장이 별로 좋아라 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같이 차가운 계절에는 수납장 안에 보관되어 있는 거 그냥 마신다.

그런 나를 보고 작은집 동서가 그랬다. 그래도 형님 맥주는 시원한 맛에

마시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맛으로 마셔요? 하길래..

술맛으로 마시지~ 했다.

끽 해야 캔 하나로 술맛을 논하는 나다...

 

이번 주는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지난가을에 파종했던 시금치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손에 모터 달고 열심을 다 해 마무리해 놓으면 뭐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실이 일주일이나 걸려 어제 오후에 도착했다는..

마음 같이 이번 주에 택배 보내기는 틀렸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단추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이것도 배송 문제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지간에 올해 옷만 열네 벌을 떴다. 

우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거기다 어제 온 실로 또 하나를 뜨기 시작했다.

어깨에서 암홀 부분까지만 사실 재미있다.

무늬가 규칙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서는

암홀부분까지 뜨고 나면 몸통이고 소매고 모두 무한 반복이다.

무한 반복......

인생같다.

무한 반복.. 그 속에서도 오류도 나오고 쭉쭉 잘 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헉 뭐야 싶게 되돌아 가야 할 때도 있고..

요즘 걸으면서도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러닝머신 위를 걸으면서도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멍뭉이랑 산책을 하면서도 숫자를 헤어리고 있는 나를 가끔

발견한다.

뜨개질의 후유증이다.

숫자를 헤아려가며 코를 늘리고 줄이고 하다 보니 

걷는 일에도, 숫자를 붙이고 있다.

우습지..

어땠을까?
뜨개질은 아주아주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기는 했지만...

직업으로 연결 해 봤으면 어땠을까?
손으로 하는 거 좋아해서

십자수도, 비즈공예도, 종이 접기도,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암튼 손으로 하는 거면 뭐든 하고 싶어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뜨개질이 제일 즐겁다.

모르는 걸 배워가며 하는 과정도 재미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옷이 만들어지고 나면 즐겁다.

만들어진 옷들이 주는 자존감도 좋다.

뜨개질 덕분에 내 옷이 아주 다양해졌다.

아들들도 좋아하면 만들어 주겠는데 아직은 내 솜씨를 못 믿는 건지

아님 엄마 뜨개질하는데 보태고 싶지 않은 건지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하긴 처음엔 이거 저것 떠 달라 했었는데 지금은 한마디로 아니! 한다.

흐...

이제 정말로 누구에게 선물해도 좋을 만큼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옷 뜨기에 재미가 들려서인지 소품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유튜브에는 이쁜 니트도 많다. 마음에 썩 내키지 않으면

도안들을 찾아서 뜬다.

언젠가는.. 정말로 언젠가는 강아지 옷 떴을 때처럼

내 맘대로 도안에 내맘대로 무늬를 넣어 나만의 뜨개옷을

만들 날을 기대해 본다

불 끄고 한 삼십 분을 티브이 불빛으로 뜨개질을 하며..

흐흐흐.. 한석봉이 엄마도 아니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이전까지는 여러 가닥을 합사 해서 뜨개를 했기 때문에 

깜깜할 때 뜨다가는 한 두 가닥 빠트리고 뜨는 경우가 생길까 봐서

생각도 안 했는데

지금 뜨는 언니 옷은 굵은 실 한 가닥이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리 집 남자 뒤척이다가 불 꺼놓고도 뜨개질하는 나를 보면

저것이 미쳤나.. 할까 보아서 그만뒀다.

밤이 깊어간다.

내일인 운동 안 가고 하루 종일 앉아 뜨면 언니에게 선물할 옷이 완성될지도

모르는데.... 고민하고 있다.

실이 워낙에 굵고 뜨는 방법이 단순해서..

그래 봤자. 단추가 아직 안 와서 내일도 못 온다고 해서..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또 이다음에 뭘 뜰까를 검색하고 있다.

웃겨... 주부가 다음 끼니 뭐 해 먹을까 검색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 뜨개 뭐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니..

불량주부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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