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우뚱 했다.
엄마 키가 원래 저렇게 작으셨나...
내 신발이 높아서 그런가...
걷는 폼이, 구부정한 허리가 아무리 내후년이면 칠순이시라 해도
너무 낯설고 어색하고 속상한 내맘 아는지 모르는지
앞서가는 엄마의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바쁘시다.
안그래도 느긋한 우리집 남자는 한참이나 뒤 떨어져 걸으면서
명절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 구경에 여념이 없고,
그 중간쯤 따라가다가
'엄마!' 하고 불렀다.
뒤돌아 서서 허리에 손을 집고 꼿꼿히 서며 바라보시는 엄마에게
'뭐가 그렇게 바쁘셔. 좀 천천히 가요....바쁠 거 하나도 없구만..'
'사우 저녁에 모임 있다믄서.'
'아직 멀었잖어. 좀 늦어도 괜찮고.'
오전에 우리집 명절 장을 보면서, 엄마 장 보러 안가? 하고 물었더니
오늘 오후에나 나가볼까 한다 하시길래 함께 가자 했더니
오후 늦게나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저녁에는 사위가 모임이 있으니 점심때쯤 해서 가자 했었는데..
아직 두시도 안됬구만 엄만 사우 모임에 늦을까봐서
꾸부정해진... 허리로.... 그렇게나 바쁜 걸음을 옮기시고 계신 것이다.
'하이고..안와도 되는디...사우가 와서 고생이 많구마이...'
'고생은요. 무슨. 천천히 하세요. 모임이 집 앞이라 늦어도 상관 없어요. 어머니' 하는데도 엄만 바쁘다.
생선점에 가서 차례상에 올라 갈 생선들 사고,
김치 담근다고 배추며, 알타리무?도 사고~
하나에 사천원씩 하는 우리집 남자 종아리 만한 무우도 사고....
엄마 손에 검정 비닐 봉지가 들릴때마다 우리집 남자가
젭싸게 가져가서 들고 다닌다.
'무겁당게. 나 하나 줘어.. 비닐 봉다리가 손바닥이 얼마나 아픈디..'
'괜찮당게요~ '
'허리 아픈디 어쩐당가. 쫌 쉬었다 가세나..'
'아녀요. 어머니. 또 살꺼 잊으신거 없으신지 생각해 보세요.
다음에 또 혼자 장 본다고 고생 하시지 말구요.'
'하이고 그려. .... 그려야지.'
재래시장을 한바퀴 돌아 대형 마트에 갔다.
뭔 차들이 그리 많은지 주차하기가 불편해서 우리집 남자는
차안에 있고, 엄마랑 나랑 마트 안에서 장을 보는데
뭔넘의 에어컨을 그렇게 쎄게 틀어 놨는지 나도 모르게 자꾸
맨살이 들어난 팔뚝을 손바닥으로 자꾸 문질러 댔나부다.
'따알~ 춥냐?'
'어. 쬐끔..'
'추워서 어쩐다냐. 얼른 위에 올라가 있어라. 내가 여기서 대충 보고 올라갈께'
'괜찮아. 엄마는 ~ 나만 추운가..'
'하이고..그러게 그렇게 약해 빠져서는...긴팔 옷이나 하나 들고 오지...
엄만 괜찮응게 1층 올라가 있어. 거긴 여기보다 안추워야. 여기가 채소 같은 것들이 많아서
더 춥당게.'
'괜찮당게 엄마는..'
계산대에서 마악 계산을 하려던 엄마가 쌀 한포 사야겠다시며 살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가시길래
그러신갑다..했다.
20킬로그램....
그걸 못 들어서 끙끙 거리시는 엄마.
'어머. 엄마 뭐야~ 엄마 이걸 못들어?'
'긍게 말이다. 내가 밥은 먹어도 늙어서 그런가 힘을 하나도 못쓰것당게..'
'내가 들을께 엄마. '
나 역시 20킬로그램이나 되는 쌀포대는 들기가 만만찮고.....
겨우 들어 올리니 울엄마
'아이고 내딸 어깨 아프고 허리 아퍼서 어쩐다냐...' 하며 걱정이 늘어지시는데
난..억장이 무너졌다.
울엄마. 체구는 작으셔도 단단하셔서 쌀 40킬로그램도
악으로 들고 옮기시던 분인데 어느새 20킬로그램 쌀 한포대 앞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분이 되셨단 말인가.......
주차장으로 돌아 오는 길..
'야야..내가 걷는 폼도 이상하고, 허리도 이상하쟈..'
'엄마. 긍게 허리 많이 아퍼?'
'허리도 어찌 아프고, 수술해 놓은 무릎도 어찌 예전 같지 않당게..'
'그러게 김장은 얼마나 할려고 배추를 오백포기나 심어. 적당히 하고 말지.'
'그래도 아직은 해서 주고 싶은데가 많어어......내가 하면 얼마나 하것냐.'
'엄마는..참...엄마 맘 모르는 거 아닌디
다음에 엄마 아퍼서 내가 니들 김장해주느라고 이렇게 몸이 망가졌다..하면
자깃들이 아이고 엄마 우리 때문에 고생 너무 많이 해서 그래..하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하겠지만
그러게 좀 조심하시지... 할꺼야. 제발 몸 좀 챙기고 해주고 싶다는 마음 좀 비우면 안돼?..'
'그려. 그려. 그래야지...' 말끝을 흐리는 엄마 표정에서 깊은 가을이 느껴졌다.
친정집에 엄마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려다가 잠깐 엄마가 꾸며놓은 텃밭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깨끗하고, 반듯하게 정성이 들어간 텃밭을 위해 엄마가 얼만큼 많이
허리를 굽혔다 폈다 했을지 얼만큼 괭이질을 해 댔을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딸~ 아까 산 포도 박스 가져가라.'
'어쩐지 젤로 비싸고 좋은거 사시드만...우리 있어. 엄마, 우리 오전에 장 보고 왔다고 했잖어.'
'그래도 가져가서 먹어, 애들도 좀 먹이고..'
'걱정 마. 엄마는 왜그래. 그냥 좀 편하게 내버려 두면 안돼? '
성질 머리 더러운 딸래미 성질에
'그래 그래 알았당게 . 그냥 가거라 그냥 가. 사우가 욕봐서 어쩐데여..'
뭐가 그리 미안한지....
그냥 고마워하면 되는게지....
고작 과일 두박스 사 들고 가서는 우리 도리 다 한것처럼 엄마가 계산하는 거 지켜만 보고 있는 사위와 딸인데..
돈이라도 한뭉터기 안기며 엄마 이걸로 장 보세요..한것도 아닌데 말이다.
'엄마, 명절 다음날 올께요. 적당히 해. 올케 오면 같이 하고..'
'알았당게. 걱정 말어. 니가 고생이 많겄다. 어서 가. 조심해서 가게나.....'
10cm는 작아지신듯 한 키와 가을 풀대처럼 마른 몸짓으로 엄마는 우리 차가 엄마 시선에서 사라질때까지
서서 지켜 보고 계셨다......
'장 봐 드리러 오기 잘했지.' 백밀러로 멀어져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남편이 말했다.
'어. 저 많은 걸 어찌 다 들어 날으겠어.. 그렇게 오지 말라더니..
나는 그래서 안와도 되나부다..했었어. 고마워요. 당신이 오자고 안했으면
난 아마 엄마 말만 듣고 또 그냥 엄마 혼자 시장바닥을 기진맥진 돌아다니시게
했을꺼야.'
괜찮다. 괜찮다..오지 말아라, 안와도 된다...는 엄마 말씀
이제는 곧이 곧대로 듣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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