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바쁜하루

그냥. . 2020. 10. 15. 22:01

넉넉잡고 딱 삼십 분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뜨면 끝날 것 같은데

그 짬이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끝이 보이는 마무리만을 남겨 놓으면 마음은 더 바쁘다.

끝냈다는 뿌듯함에 도취하고 싶은 것인지

그냥 완성해서 입혀 보는 재미를 즐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성격이 급한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참 바쁜 하루였다.

우리집에서 버려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이미 생명을 다한

서른 살은 족히 넘었을 냉장고가 거실로 자리를 옮기고

누수 공사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참 쉽지 않아.

물론 기술자가 오셔서 하는 일이고 우리 집 남자가 있으니 

나는 고작 커피나 끓이고, 과일이나 깎고

날리는 먼지나 잡으면 될 일이지만 욕실 바닥을 깨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배관을 찾아내고 고치는 일은

일을 직접 하시는 분만큼이나 지켜보는 사람도 분주하게 만든다.

다행히 누수는 잡혔고, 마음은 개운하다.

어제 아침에 남편 친구라고 왔던 그분은... 흐..

왠지 모르지만 나 같은 벌러꿍이? 한테도 믿음을 얻지 못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헐렁이가 깐깐해 보였던지

어쨋는지 전화도 없이 일을 포기해 주었다.

아니 무슨 욕실 누수 잡는 공사 하러 온 사람이 욕실도 안 보고

이러쿵저러쿵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오늘 일 해주신 분은 깔끔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 주셨다.

언힌 체기가 내려간 듯 후련하다.

낮엔 한의원에 갔었다.

두 아들 데리고 남편이랑..

큰 넘은 밀가루 못 먹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약 안 먹는다 하고,

말라깽이 작은 넘 진맥하고 약 짓고

나도 진맥하고 약 또 짓고....

난 그만 먹을 때 되지 않았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냥... 뭐... 조금 더 기대 보련다.

더 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한의원 갔다가

점심 먹고~

넷이 나와 점심 먹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냥 뭘 먹어도 맛있었다.

안 먹어도 배 부르다는 말. 그 말이 내 배를 채웠다.

작은 넘 양복 사고, 거기에 맞춰 와이셔츠, 넥타이 벨트 구도까지 사고,

큰아이 지가 원하는 브랜드의 트레이닝복 사주고~

벌로 사랬더니 바지만 사서 작은 넘도 바지 하나 사줬다.

큰 넘 거 사러 갔는데 작은 넘이 두배는 더 비싼 걸 집어 들었다.

계산하면서 알았다.

현관문도 새로 맞춰 교체하기로 하고,

마트 가서 쌀도 사고, 장도 보고, 

오늘 하루 벌이는 하나도 없는데 쓴 것은 보통사람 월급만큼 나간 것 같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남편 벨트랑 구두 사랬더니 다음에 산다고...

그냥 사도 될 텐데 사준데도 괜찮단다.

아들은 미안함이나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부모가 해 주는 대로 더 욕심부리지는 않지만

받는데

부모는 스스로를 챙기는 데도 오늘 같은 날은 좀 미루게 된다.

반듯하게 정장 입은 작은아이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더없이 뿌듯했고,

아이들에게 다 해주고 자기는 구두 하나 사는 것도 망설이는 남편은 안쓰러웠다.

인생사가 다 이런 거겠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가을은 깊어가고 코스모스도 시들어 간다.

가을이 좋다. 이 스산한 가을이..

'지나간날들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나침에 중요한 것을 놓친다.  (0) 2020.10.17
몰래 먹는  (0) 2020.10.16
어제까지  (0) 2020.10.13
요즘  (0) 2020.10.09
기다리면 더 늦게 온다.  (0) 20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