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소나기

그냥. . 2020. 11. 15. 19:35

이른 아침 밥상머리에서 소나기를 대차게 맞았다.

알고 있다.

힘이 들었을 것이고 짜증이 쌓였을 것이고 어김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했을 것이고 그것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었다는 것을..

이해는 되는데 내가 바뀌거나 나서고는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어놓은 선은 절대로 넘으려 하지 않는

참 답답한 사람..

거 선이 사라지면 내 방호벽이 사라지는 기분...

그건 인생 쓴맛을 제대로 가르쳐준 

오늘 소나기로 퍼 부어 주신 분이 제대로 가르쳐 준 

인생철학이다.

삐뚤어진 철학..

삐뚫어진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게 다 삐뚤 하다.

그곳으로 향하는 나의 시선은 늘 삐딱하다.

그러니 올곧게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 시선의 각도가 삐뚤어지는 데는 수없이 많은 소나기와 낙뢰가 있었고,

소나기 소설 속에 나오는 여린 소녀처럼 나는 그저 그 소나기에

속절없이 젖었었다. 죽을만치 

살려고 찾은 방법이 삐뚫림이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변명하지만..

나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 소리도 내지 못하는 몸부림 속에서

내 심장에는 말라 비뚤어진 봉숭아 꼬투리가

자리 잡았다.

우리 집 남자도 아이들도 애쓰고 있다는 거 너무 잘 안다.

누구나 다 그 정도의 멍은 가지고 사는 거라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소나기 한 번 맞고 나면 푹 꺼져 버린다.

물 묻은 솜사탕처럼..

철없이 몇 번이고 투덜대는 우리 집 남자는 날 위한 투덜거림이었겠지만

그건 또 다른 작은 여우비가 되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찾아서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어쩌면 그 소나기의 원인인 그녀가 침대에 예쁘게 가져다 놓은

국수 실리콘 양말..

그걸 신기다 포기했는데 

산책 다녀온 사이 식사하러 다녀온..

국수 실리콘 양말 신기는 거 가르쳐 준다고 

이렇게 요렇게 해서 신겼는데~

확실히 오랜 애견인은 다르다. 능수능란하다.

울 국수 네 발바닥에 신겨진 실리콘 양말에

엉거주춤 걷는 모양새가 너무 웃겨

포복절도하며 웃었다.

몇 년 만 이여...

이렇게 웃어 본 일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며 우리 집 남자도, 나도,

그녀도 웃었다.

그녀는 손톱만큼이나 인지 했겠는가 본인이 내게 소나기를 제공하는 구름이었다는 것을

그냥 그녀는 자기 필요한 것을 쉽게 얻으려 했을 뿐

그걸 거절 못하고 감당도 안되면서 감당하다가 소나기를 퍼부은 것이니

그녀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게 이런 말을 들을..

어쨌건

소나기 기운에 욱신거리던 마음이 

쨍한 폭신한 햇살에 말린 양 맑아졌다.

그래 그런 거야 인생은..

소나기의 원인이었던 것이 이렇게 따듯한 햇살이 되기도 하는 것..

음지와 양지처럼

모두 다 좋은 것도

모든 것이 다 나쁜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삐뚤어진 시선을 바로 잡지 않는 한

나는 늘 그쪽을 바라보는 시선은 삐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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