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어렸을 적에
사납게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에도 커다란 오동 나뭇잎을
따서 우산 대신 쓰고 놀아도 좋았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비가 좋았을까?
흙탕물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 빗방울이 튕겨져 오르며
내는 모양이
신기해서 한없이 들여다봤던 기억이 있다.
고인 흙탕물을 검정 고무신을 신고 뛰어 댕기며 신났었던
비가 내리고 난 다음에는 큰아버지네 논에 있던 둠벙에 가서
우렁이를 한 바가지씩 잡았었다,
수풀만 들어 올리면 주렁주렁 우렁이들이 미국자리공처럼 딸려 나왔다.
우렁이 잡아서 그 어린 손으로 삶아서 알맹이만 쏙쏙 빼놓으면
엄마가 상추랑 쑥갓이랑 부추를 넣고 새콤 달콤하게 묻혀 주셨었다.
그때는 그것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날마다 먹어도 좋겠다 싶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물이 불어난 냇가에서 놀다가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추억은
잃어버린 상실감과 엄마에게 혼나겠구나 하는 생각과
내일 학교 어떻게 가지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무신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한 적은 없는 것 같으니
버스도 많지 않던 그 시절에 엄마는 그 많은 엄마 몫의 노동과
사 남매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분주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차로 움직이고, 십 분만 나가면 뭐든 물건으로 바꾸어 올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을 살면서도 바빠 죽겠네
바빠서 전화 한 통 못하게 사네 하는데 말이다.
내가 그렇듯 아버지의 하루보다는
엄마의 하루가 더 분주하고 고단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비가 내린다.
옆집 둥이 언니가 주신 꽃차를 마시고 있다.
향이 예술이다.
호로록..... 하는 입속으로 꽃망울 들어와 씹었더니 쓰다.
쓰다....
그래도 향은 정말 좋다.
이 늦은 가을날에 비는 내리고, 식어버린 국화차를 옆에 두고
토닥토닥토닥 어깨 지친 어깨 두드리듯이 뭔가 내려놓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두드린다.
사는 건..
살아간다는 것은 됨의 연속인가...
좀 나른한 편안함이 스며들면 어김없이 차디찬 바람 한줄기처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게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너무 거창한가.
잠깐 말다툼
아니 말다툼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일 할 때 여유 부리는 남자 덕분에
나는 피곤함이 더 했고,
왜 그럴까.. 함께 열심히 할 때면 더 열심히 일을 해도 괜찮은데
한쪽이 느슨해지면 피로도가 배로 밀려오는 것은
힘들면 그만하자는 남편의 말에
그만 하자고 하는 게 아니고 당신이 좀 서둘러 주면 좋잖아.
했더니 내가 노는 줄 아느냐 나도 바쁘다 하며 버럭 한다.
그냥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그럼 서로 한방씩 먹였으니
서로 아쉬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는데 우리 집 남자의 뒤끝 작렬이 헐이다.
가만 보니 내가 아니었어도 짜증 날 일이 있었긴 했다.
그렇다고 그건 아니지 싶어 서운한 것은
평소에는 내가 이렇게 맘 편하게 살아도 되나 싶을만치
많이 신경 써준다. 청산유수 말에 기름이 칠해져서 가끔은 내가
미끄덩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뜬금없는데서 나오는 뒤끝 작렬은 감당 불가다.
머지않아 며느리 볼 나이 그만큼 오래 부대끼며 살았어도
사람 참 어렵다.
아니 내가 물러진 것이다.
이 정도가 무슨 스트레스라고..
비가 오길래
가을 낙엽비가 쓸쓸하게 내리길래
파아란 비닐우산이 생각이 났다. 뜬금없이
파아란 비닐우산은 가끔 향 짙은 추억으로 다가오지만
그리움은 그냥 그리움일 때 아련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큰아이 스터디 카페 간다기에 저녁 챙겨주는데
주방 베란다 쪽 창으로 노을이 이쁘다.
그새...
파란 비닐우산을 생각해고 있는 그 잠깐 사이에
서쪽 하늘에 노을은 예술이다.
사람 맘 보다 더 알 수 없는 게 지금 저 하늘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