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커피한잔

그냥. . 2020. 12. 31. 21:23

뜨거운 커피 한잔 놓고 앉아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창문을 열어재끼고 

싶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양손으로 살짝 안아 잡은 커피가 찰랑이는 잔은

더없이 따듯하고, 

운동장 만큼 넓은 침대를 독차지하고 골골 거리며 

잠들어 있는 국수의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다.

조금 있으면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 올 아들이 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잠시 멈춤 하는 아들에게

더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세상 제일 한가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는 작은 아이가 

아직 한참 꿈나라일 시간에 나오길래 뭔 일이냐 물었더니

지난번에 본 기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그런다.

진짜? 합격율이 엄청 낮아서 기대도 안 한다며.

했더니

이번 시험부터 난이도가 조금 조정이 되었나 봐 하면서 

하는 말이

시험 본 날 합격 할 줄 알았는데 괜히 설레발치기 싫어서 말 안 했어.

알 수 있어. 그것을?

느낌상..

그랬구나. 합격률이 저조해서 3%도 안 되네 어쩌네 했었는데

운이 좋았건 실력이 좋았건 정말 잘 된 일 아닌가...

운도 준비된 사람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는 거 

아들을 보면서 느낀다.

곧.. 다음 달이면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지방에서 서울 그것도 그 명문학교에서 기죽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되었는데

믿어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2021년도에는...

우선 큰아이가 일과 공부를 같이 했었는데 공부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작은 아이는 서울로 상경하게 될 것이고,

남편은... 추워지기 전해했던 일을 다시 해 볼 생각이라고 하고

나더러는 1~2년 쉬면서 건강 좀 회복하라 하는데...

건강한데 나... 싶다가도 사실 자신 없어질 때가 종종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지금 하는 일의 양을 좀 더 늘려서 둘이 같이 하는 게

제일 좋기는 한데 

남편이 아닌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마냥 놀지는 못하겠고...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자 했더니..

그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안된단다. 시작을 하려면 준비도 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두고 보자는 거냐며...

그렇기는 한데 

나는 아직도 마냥 놀 생각은 못하고 있다.

놀아 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내 삶도 뭐 그렇게 일에 치어 살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온 세월은 아니어서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물론... 아주 펑펑 노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 둬 봐야겠다.

괜히 고집 부러 탈 나면 나만 고생인가.

가족들에게는 무슨 민폐고 엄마한테는 무슨 못할 짓인가 싶다.

햇살이 너무 좋다.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을 새해가 준비되고 있다.

내 아들들의 날들은 봄날들의 연속임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고~

남편 또한 지금처럼 변함없이 두어 몫 하며 살아갈 것이니

나는 내 생각만 하는 해로 한 번 살아 볼까 한다....

그래... 이제 이렇게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이 자알 보내고~

 

 


 

저녁 설거지를 하고 나서 밖을 내다보니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더라고...

청소기 돌리면서

나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예전 아주 어렸을 적에 요구르트 병에 실 연결해서 실전화 놀이하던..

마치 그런 것처럼 

국수랑 나랑은 거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내 반경 3미터 밖을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물론 날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형아랑도 잘 있고, 아빠랑도 잘 있는다.

그런데 꼭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면 저렇게 따라다닌다.

따라다니던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가..

세상 그 누구도 나만 저렇게 바라본 사람? 은 없었는데

국수야~ 가끔 부담 스러.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으면 좋겠어.

국수야~ 눈 구경 갈까?

뭔 소리 하는 거야~ 고개를 갸웃 거리는 국수에게

나갈까? 했더니 벌떡 일어난다.

추울까 봐 옷 껴 입히고

골목 잠깐 나갔다 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곱게 내리는 눈을 얼굴로 받는다.

싫치 않네 그 차가운 느낌이...

잠깐 뛰어다니다가 미끄덩하더니 집 쪽으로 쪼르르르 달려가는~

저 아이도 나처럼 눈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눈이 온다.

2020년 12월 31일에 눈이 폭신하게 내리고 있다.

좋다.......

울 엄마는 어제도 눈 오늘도 눈이어서 밖에도 못 나가고

방 안에만 계신다는데...

눈이 많이 와서 길을 내야 할 정도라니 

집안에서 감옥살이한다는 엄마 말이 참 쓸쓸하게 들리는데

철없는 나는 눈이 좋단다.

김여사!

애썼어. 한 살 더 먹느라 

나이 들수록 나이 먹기가 쉽지 않지!

내년에는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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