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날이 화악 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던 산책로에 눈이 사라졌다.
산책로뿐만이 아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그늘진 곳에 눈들도 밟으면
질퍽하니 발자국이 찍히면서 물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도 꽁꽁 얼어서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눈도,
걸어서 건너도 좋을 것 같았던 강도 흐물흐물 녹아들고 있다.
오늘은 징검다리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갔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봄을 부르는 것 같드라고.
아직 1월이고, 추울 날이 너무도 많이 남았는데도 하루 따듯하니
어깨 위로 아지랑이라도 피어 올리려는 듯 포근하고,
바람마저 살랑하게 느껴진다.
그래.. 이 좋은 햇살이 만들어 내는 이 상큼한 바람
그동안 그렇게 춥지 않았다면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따듯해서 참 좋은 날이었다.
나는...
남한테 부탁하는 것도 싫어하고, 내가 해 주기 부담스러운 것을 부탁하는
사람도 탐탁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남한테 부탁하는 것이 너무 쉽고,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보다 더 앞서서
해결하려 바쁘다.
그래서 젊은 날의 둘은 엄청 많이 다투었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지금은 서로 많이 희석되었지만 가끔은 난감한 상황이 너무
감당이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건 아닌데 싶은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던지겠다는 저 사람을......
부딪혔다. 이번은 아닌 것 같다고
이러쿵저러쿵... 물론 내가 늘 지고 말지만..
나는 마음이 너무너무 불편했다.
그냥 내 맘 편하게 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그렇지만 아니면 알아서 아니라고 하겠지. 왜 먼저 단정 짓느냐는.....
그래 다른 때 같으면 뭐 정이려니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더 서운해할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이미 그래 하시고 싶으면 하고 싶은데로 하시요~ 하고 포기했지만 마음은
정말 불편했는데..
뭔 마음이 들으셨는지 내 말대로 해 주시겠단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결벽증적인 나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나.....
이렇게 저렇게 비슷하게 희석되어 가다가
거울처럼 비슷해지는 날은 오기는 할까? 흐.....
쉽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