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추운데
햇살이 좋아서 잠든 세상에 내린 눈이
사그라졌다.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은 이렇게 이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젤루 좋은 것 같다.
질척이며 녹는다던가 반들거리며 얼어붙는 불편함이나
부담감 없는 깔끔한 사라짐..
그 눈이 더 이쁜 날이었다.
토요일 엄마네 가는 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뭐라 하길래
한마디 쏘아 줬다.
내가 가고 싶다는데 왜 그래.
엄마 생일 때 안가서 가려고
나는 여기서 제사고 명절이고 몇 년을 챙기고 사는데
하나밖에 없는 엄마 생일도 모르냐. 어떻게 그래!
하고 쏘아 붙혔다.
23일 아니냐? 22일?
말을 하지 마 29년 됐다. 그니까 암말도 하지 마. 했다.
며칠이 좋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엄마 일로 또 마음 상하는 일 생길지도 몰라서
다른 이야기로 화재를 돌렸다.
미안함은 있는지
아무 생각 없는지
별 말없이 다른 화두에 신나 하는 우리 집 남자..
그래..... 뭘 뭘 기대하겠어.
내가 챙기고 살면 되는 거지..
어찌 보면 우리 집 남자가 저렇게 무관심한 것도 내 탓인 것도 있다.
결혼 초에는 어른들 눈치 보느라고, 명절 하고 얼마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소홀했고,
그 뒤로도 습관처럼 그냥 전화 통화나 하고, 용돈이나 좀 보내 드리고
말았었다.
왜냐하면...
명절 사나흘 전쯤 과일이며 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엄마네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일주일이나 열흘 사이 명절까지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던 게 사실이고,
이번에도 가려고 했었는데 그 이유로...
사실은 마음에 조그마한 회오리고 불고 있어서
엄마가 눈치채고 속상해할까 봐 접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뭐....
아주 무감각하거나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고마울 때도 많다.
나보다 일처러에 능ㅇ숙하고,
엄마한테 이런저런 살아가는 일 더 자상하게 물어봐 줄 때는
세상 미웠던 마음이 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그래도 다정해서 다행이다 싶을 때 많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거기까지다
울 엄마
통화하면 말씀이 많으시다.
보통이 이십 분 이상은 하는 것 같다.
시니어 클럽에서 전화 왔었다고....
중학교 청소하는 일 하게 되었다고
희소식이라고 엄청 좋아하신다.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좋다.
중학교는 집에서 그리 많이 먼 거리도 아니고,
옆동네 어르신이랑 같이 한다니
혼자 다니시는 거 아니니 다행이고,
날마다 집안 텃밭에서만 매달려 계시는 거 보다는
활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 다행이다.
아프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울 엄마는....
나는..
단순하게 살자
단순하게 잘살자 가 목표다.
마음도, 관계도, 단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