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날이 많이 추워진다더니 추위가 바람을 앞세워
달려오고 있는 느낌이었지.
멍뭉이가 나 산책을 시키는데~
맞아 오늘은 내가 멍뭉이 산책을 도와준 것이 아니고
멍뭉이가 나를 위해 걸어 주는 기분이었어.
동네 뒷길로 잠깐 돌다 들어오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내가... 어제도 대충 걷고 말았는데 오늘은 제대로 걸어야지
하며 천변으로 유도했지.
몇 번 망설이기는 했지만 울 멍뭉이는 내가 지 의사를 많이
존중해 주는 만큼 내 의견도 많이 따라주는 편이야.
흐린 건지 미세먼지인 건지..
그냥 흐린 거라고 우기며 걸었지
강물이 일렁이니 물오리들도 덩달아 일렁이더라고
마치 거친 바다 위에 일렁이는 작은 배처럼 그렇게
물오리가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그 위에서 유영하는 것을 보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자연스럽게 물의 흐름에 몸을 맞긴 것처럼 보이지만
저 일렁이는 물결을 견디기 위해서 물밑에선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잖아.
그냥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가까이 두고 보면 그저 아름다운 것은 없는 거잖아
세상이 온통 뿌연 했어.
마른 풀대가 뿌연 허공 중에 흔들리니 내 몸도 풀대가 되고 싶은 건지
물오리처럼 바람을 타고 싶은 건지 흔들 거리는 거 같은 착각
진짜 연말이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날마다 가는 날들에 숫자를 먹이고 오늘내일하는 것도 어찌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렇게 정해진 규칙대로 살다 보니
아무 감정 없이 흘려보내던 오늘과 오늘이 어느 날은 조금 더 특별하고,
어느날은 나는 아무 날 아닌데 다른 이들이 특별한 날이라고도 하지
오늘처럼 말이야.
오늘이 뭔 날인데?
그게 뭔데!
하고 싶지만 사실을 그런 말들이 의미 없을만치 내게는 의미 없는 날이야.
다만 아들이 사 준 치킨으로 기분 내고,
둥이 이쁜 언니가 선물해준 국수의 클스마스 케익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거..
멍뭉이 먹는 케이크도 있드라고~
지금 뜨는 옷이 마무리 단계인데..
시작 단계였으면 조금 크게 떠서 둥이에게 선물로 줬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그거 뜨고 나면 멍뭉이 옷은 한동안 그만 뜰 생각인데..
멍뭉이 케이크를 받고 보니 뭔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싶어 지네.
추워.
많이 추워지려나 봐.
마당에 잠깐 나갔었는데 오싹~
오늘 같은 밤은 뜨끈한 라테가 최고지만..... 날밤 새는 불상사를
마주하지 않으려면 참아야지~
오늘은 왠지.. 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일렁이는 물결 위에 물오리들을 보는데 울컥하더라고.
감정도 날궂이를 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