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결정은 나 있었다.
바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남편이 이해해 준 것은 아이들 영향도 좀 있고
내 건강상태도 이유가 되었겠지
명절 음식..
처음에 시집와서는 작은어머니랑 어머니랑 나랑.. 그렇게
셋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동서들이 들어오고 작은어머니가 명절 당일 오시는 걸로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밥 해 먹는 게 제일로 싫었다던 어머니도
그렇게장만 몽땅 봐와 나에게 떠 맡겼다.
그러고 보니 적어도 그 내가 맡아 하기 시작한 지가 적어도 2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앞둔 2년 전 추석..
그때도 나서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런 생각도 못했었다.
물론 대단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수술도 아니었었는데 평소랑 하나도 다르지 않게
명절을 치르고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했다.
그때까지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해였던가 바로 설날 두어 달 전에 그러니까 11월 어느 즈음에
옆집 언니가 무릎 연골 파열 수술을 했는데
그다음 해 설 명절을 동서들이 책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나는 암수술 앞두고도 내가 주도해서 했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한 두 번 전은 좀 주문하던지 사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꺼냈지만 남편은 쉬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안다. 이해한다. 어떤 마음인지
그렇지만 전 부치고 나물하고 음식 하고..
그 사람들 먹이기 위해서 별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며칠 전부터
바쁘고 정신없고....그랬다.
전날부터 부산하게 모여서 하루 종일 좋기도 하고 상처도 받고..
너무 싫은 술파티도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하고.. 명절 이브도 아니고
저녁으로 둘째네가 언제부턴가 가지고 온 고기 구워 먹고...
선물 들어오는 거 가져오기도 하고, 가끔은 삼겹살을 사 오는 거
같기도 했지만 여유 있게 살고, 우리하고는 사는 게 확연히 다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늘 나 나름 혹시 안 가져올지도 모르는 구이용
고기에 대한 대비도 했었는데 작년...
뭔 일이었을까.. 아마도 어지럼증 때문에 정신도 없었기도 했고 어머니가
안겨준 스트레스랑 노느라 명절이고 뭐고 다 싫다 싫어 그러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늘 준비해 오던 동서가 그냥 왔다.
명절 전 부치고 저녁 때 자기 집에 가서 딸이랑 데리고 들어오는 동서 손이 빈 손이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가족들은 다 모였는데 집안에 별다른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 것들은 없고...
아........... 어쩌지 미안한데 난 늘 동서가 준비하길래...
그냥 아까 양념해 둔 소불고기 볶아서 전이랑 먹자~ 양 제법 많잖아. 했더니
듣고 있던 조카가 집에 있는데 가져올걸...이라는 말과
동서의 말씀하시지 아까 갔을 때 사 오기라도 하게 하는 말이 거의 동시에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물론 뭔가 마음의 동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명절 전날 고기는 늘 책임지는 게 싫어지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가
얄미워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거기에 길들여진 나는.. 허...
어찌나 얼굴이 빨개지고 무안하던지..
물론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이래 저래서 준비 못했어요..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싶었던 서운함..
당황하기는 했지만 내가 준비 안 한 잘못이니 내 잘못 인정하고
동서 미안해 내가 준비 안한 게 잘못이지.. 하고 말았지만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내가 뭐든 준비 해야지 했었다.
이번에 병원에 어머니 보호자로 가 있게 되면서..
말로는 환자가 환자 보호자 해야 해서 어떻게 해요.. 말로만
걱정하며 코로나 때문에... 하며 두발짝 물러나던 동서들...
그렇구나.. 말은 누구나 하지 싶은 서운함..
이런저런 내 생각 마음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동서들에게 전화를 했다.
명절날이나 보자고, 전 부치러 안 와도 된다고...
막내동서는 좋아라 하고,
둘째 동서는 내 걱정을 하는 듯 하지만 본인도 편할 거라 생각한다.
멀리 떨어져 살아 서로 보기 힘든 사람들도 아니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인데
굳이 명절 전날부터 부산 떨고... 그럴 필요 뭐 있어.
전은 남편이랑 나랑 둘이 조금만 하기로 했다.
주문해도 그만이지만 그건 다음 문제고
바보 같은 큰며느리 큰동서 뭐 그런 거에서 이제는 좀 가벼워져도 되지
않을까..
난 이미 충분히 많이 상처 주고받고 살았잖아. 알게 모르게..
이제 내 맘 편한 대로도 좀 하고 살아보자 싶다.
명절 전날에서 벗어난 것이 이렇게 거창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