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다.
시원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다.
쏟아지는 비가 눈앞에서 뚝뚝 떨어진다.
지나가는 사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날아가는 새나 가끔 바라봐 주면 되는....
내 작은 창가에 앉았다.
비 구경하기는 너무 좋은 최적의 공간이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내 꽃밭이 빗속에 젖어있다.
아침 먹고 일곱 시가 되기 전
꽃밭에 나와 풀도 뽑고...
잡초는 뽑아내고 뽑아내도 뒤돌아 보면 또 있다.
고사리가 아홉 형제라더니
잡초는 스물 다섯 형제쯤 되는 모양이다.
빗소리가 참 좋네..
키 작은 아이들을 앞으로 이사시켰다.
비가 온다기에..
밀집되어 있는 아이들 간에 거리를 좀 두고
꺾어 꽂아 볼까 싶은 아이들도 몇 개쯤 비를 기다리며
꽂아 두었다.
다른 꽃들에 치어 그늘 속에서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었던 사계 패랭이도
끄집어 내에 화단 가장자리 돌 사이에 엉성하게 대충대충 묻어 놨다.
비가 알아서 해 줄꺼라 믿고
항아리 치우다가 넘어갈 뻔했지만..
큰 항아리가 나를 잡아 주어 오른쪽 팔꿈치 뒤가 좀 벗겨지기는 했지만
충격보다는 덜하니 다행이다.
작은 항아리에 넘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안 봐도 겁나는 상황이다.
울 집에서 제일 큰 왕 항아리가 나를 받아 주었으니 벗겨진 걸로 끝났으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몇포기 꽃나무 자리 배치 몇 개 해 놓고
비가 스멀스멀 맘에 들게 내리지 않아서
은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며칠 전에 뿌린 친구네서 얻어오고 식당 꽃밭에서 따 온
매발톱 씨앗도 오늘 비에 제 자리 잡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엊그제 둥이 언니가 주신
으아리, 장미 그리고 금전수도 꺾꽂이한 것들도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냥 빗소리만 들어도 좋은 날..
비와 음악과 선풍기 바람과 그리고 노트북과... 차 한잔
예전엔 따듯한 이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동그란 왕얼음 하나 들어간 시원한 차 한잔...
옆집 언니가 차 한잔 하러 오신다고 해서 차는.. 잠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저 나무처럼
처 가로등처럼..
저 새들처럼..
저... 꽃들처럼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고 싶을 때 있다.
그럼 바로 골골이겠지.
흐..
난 나를 너무 잘 알아.
낭만보다 현실이 가까운 법이거든..
비 온다.
그냥 나처럼 비 좋아하고, 빗소리 좋아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
좋아하는 친구 하나 가까이 살았음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날
뭐 김치부침개라도? 하는 거 말고..
그냥 멍하니 창밖 바라보며
노래 듣고, 간간히 수다 떨고..
차 한잔 마시면서 이 시간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내가 비를 너무 좋아하기는 해..
너무 좋아해서..
나만큼 비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은 못 본 것 같아.
내 동생이 빗소리 좋아한다 하더구먼...
동생은 너무 멀리 산다.
아.......
이 빗속에
전깃줄에
다섯 마리 때까치들이 빗물샤워를 즐기는 건지
더위를 시키는 건지..
두 마리 날아가 버리고 세 마리 앉았다.
너희는 참 건강해 보인다.
이 비가 두렵지 않니?
주먹만 해가지고는
너 보다 천 배는 클 것 같은 나도 그냥 바라 보고만 있는데 말이다.
흐...
다 날아가고 한 녀석 남았다.
저 녀석은 비가 진짜 좋은 모양이다.
나랑 친구 해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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