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편안한 하루하루(2023)

청소를 하다가

그냥. . 2023. 8. 20. 10:31

청소기를 돌리다가  책꽂이 앞에 섰다.

저 제일 위칸 깨금발을 딛고 손을 길게 뻗어야 닿을 수 있는 그곳에

내 오래된 일기장들이 있다.

어제도, 오늘도 눈에 자꾸 들어와서 신경 쓰이게 하는

일기장 중에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돌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데

감정이 생생하다.

일기를 책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그때는 있어서 책으로 만들어 놓은..

책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의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원본을 거기에 맞춰 줄이느라고 글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거나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제법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이고 보니

그때 감정으로 물 스미듯 스며든다.

우울한 날은 우울함이

또 기분 좋은 날은 기분 좋음이..

늦잠 자서 정신 없던 날은 또 정신없음이..

이유도 모르고 야단맞아서 마음 아픈 날은 그때처럼이나 마음이 쓰리다.

그래도...

나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싶기는 하다.

보통 기억은..

시집살이... 안 좋은 기억... 우울함이 대세였는데

그런 삶 속에서도 웃음도 있었고, 고마운 마음도 있었고 또 가끔은 이해도 있었더라고..

그런데 왜 기억은 흑빛에 가까울까?

잔잔하거나 좋은 기억은 밝은 톤의 색으로 표현되어서

그렇지 못한 다크 한 느낌의 것들에 묻혀 버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과거는...

그런 색으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어깨가 욱신 거린다.

모로 누워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오십견으로 불편해도 별루 신경써지주 않았던

어깨가 아프다 한다.

요즘 코바늘 뜨개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 뜨면.. 아.......... 어깨야... 하면서 눈을 뜨고

아침 먹고 나면 잊어버린다.

안 되는 자세 불편한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심함 탓인지 미련한 탓인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청소는 거기서 끝이 나 버리고

내 늘어져 있는 시간은 능소화 가지 담벼락에 늘어지듯이 늘어져 있다.

바늘꽃이 허공에서 그네를 탄다.

바람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유독 바늘꽃만 살랑살랑..

여리디 여린 가지 끝으머리에 모여 핀 꽃이 무거운 모양이다.

참 이쁘다. 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있구나 바람..

내가 느끼지 못해도 있어..라고 가르쳐 주듯 한들한들

많이도 아니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바늘꽃이 예쁘다.

제대로 태양 빛을 못 봐서 그런지 친구 말대로 색상이 좀 히그머리 하지만..

나름 이쁘다.

희그머리면 어떻고 희여 멀건이면 어떤가.

저 아이는 또 저렇게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냈겠는가 말이다.

안개나무는 키가 너무 잘 자라서 싹둑 잘라 버렸다.

지금 자르면 내년에 꽃을 못 볼지도 모르지만..

내년 꽃볼 때까지 놔두면 말 그대로 감당이 안 될 만큼 키가 자라 버릴 것 같아서

잘라냈는데 짤뚱해진 나무가 좀 안쓰럽기는 하다.

어디선가 봤는데 참 신비스러워서 심었는데

키가 제법 큰 나무라나는 걸 몰랐다.

내 작은 꽃밭에는 어쩌면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앞마당 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옮기려면 더 크기 전에 올 가을이나 내년 이른 봄쯤 옮겨야 할 텐데 말이다.

텃밭 쪽은 내 영역이 아니라 어렵다. 

사는 건 참 예측 불허의 연속이다.

봐...

청소하다가  말고 일기장 들여보다가 말고

이렇게 노트북에 앉아서 창밖 꽃들 바라보며 

이러고 있을 줄 누가 알았느냐고....

어쨌건..

오늘 청소는 이걸로 땡이다.

슬금슬금..

열심히 하던 청소에 게으름이 끼어드는 신호는 설마 아니겠지.

난... 열심히 청소해야 할 의무가 있어.

이렇게 이쁘고 편한 집에서 내가 살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러니 그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 않겠어.

그렇지...

그러도.. 그렇다 해도 오늘은 그만..

쫌 씻고,

쫌 시원하고

쫌 씁쓰름한 커피 한잔으로

내 귀가 아닌 

저 집 뒤 ㅅ풀 속에서 들리는 매미소리 들으며

그렇게 또 하나의 일상을 채워야지...

좀 흐리긴 하다.

어제처럼

비라도 잠깐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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