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편안한 하루하루(2023)

다시살아 볼 수 있다면

그냥. . 2023. 9. 25. 23:19

멍뭉이가 자고 있는 저 방석 다섯 개를 풀어서 소파매트로 합체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머지 실은 새로 주문해서 채우는 걸로 했다.
소파매트를 뜨려면 도대체 몇 볼이 필요할지 알 수 없어서
우선 집에 있는 방석 다 풀어 떠 보고 모자라는 부분과
큰아이 거에 들어갈 양만큼만 주문하면 될것 같다.
실 구매하는거 보면 대책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고, 저 실은 변형도 거의 없고, 먼지도 많이 안 타고,
푹신해서 사람이나 멍뭉이나 아주 좋아하는 매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커튼실을 주문해서..
아주아주 길게 잡아서 커튼을 시작할 생각이다.
색상을 어떤걸로 할지 그걸 고민하고 있다.
집 가구 분위기 따라갈까?
엉뚱한 색을 해 볼까... 그러고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추억은 서로 다르게 저장 된다는 거..
그리고 남편은 내 과거에 대해...
시집살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거..
물론 일깨워 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오늘처럼 생각없이 나를 건드려서 본전도 못 찾는~ ㅎ....
모르더라고..
내가 뭐가 제일 힘들었는지..
어떤 것이 젤루 싫었는지..
왜 죽고 싶었는지..
죽지못하고 버떠야만 했는지
무엇이 나를 지탱해 주었는지..
하긴 나도 요 며칠 전에 깨달은 바가 있기는 하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비슷한 시집의
제목이 있는데..
내 마음이 딱 그거였다.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주늑 들어 시집살이를 받아들이면 안 되는
멍에처럼 안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당당하게는 아니어도
뭐 그렇게 원하셔서 주저앉히셨으니 책임지세요 하고
살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살아보지를 못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늘 무거웠고
불편했고, 부담스러웠고, 죽을 만큼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몸이 만산창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졸업과 거의 동시에 결혼을 했다.
애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는 이유로 다른 뭐도 통하지 않았다.
그때 내 동생 고3 내가 데리고 있다고 갑자기 혼자 떨어져 자취를 했다.
그것부터가 나는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직장도 없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시작되었고,
타 지역으로 얼마든지 직장 잡아 나갈 수 있는 상황인데..
이미 출근만 하면 되는데 
이 집은 안되었다.
애들 할어버지가 아프시다는 이유로 장남이니 집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
내가 너 하나 취직 못 시키겠냐였고, 나중에는 내가 너 하나 책임 못 지겠냐였다.
남편은 그때부터 애들 할아버지 수발비서처럼 살았다.
아버님 하시는 일에 보조자 역할..
월급도 없는..
거기다 약 챙겨 드리고, 인슐린 주사 놔 드리고.. 병원 모시고 다니고...
집안 농사일 거들고...
그렇게 그렇게 내가 너 하나 취직 못 시키겠느냐는 말은
남편은 반 백수로 만들었고...
몇 번을 벗어나려 했다가 주저앉혀졌으니 정신적으로 피곤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집안일을 거들어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사다 주는 찬 거리로 밥하고, 살림하고, 
애들 또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 필요한 것을 얻어냈다.
난 날마다 날카로워졌고, 야위여 갔다.
남편이 직장을 잡아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니 돈 내가 관리해 줄게.. 했고.. 아들도 믿지 못하는데 며늘에게 어찌
남편 월급을 맞기겠는가..
그렇게 다니던 직장에서 타지역으로 발령이. 났는데도
그럼에도 시부는 아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너 하나 책임 못지겠냐시며..
작은아이 초등입학 시키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직장 잡아 내일부터 출근하면 되는 그날
말씀드리는 그 순간부터 단식..
내가 너희들 하나 책임 못지겠냐시며..
네가 돈 벌러 나가면.. 어쩌고 저쩌고...
왜 어머니 계시는데 내가...
그때만 해도 시부님 단식이 제일 무서웠던.. 당뇨는 굶으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나는 결국 무릎 꿇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분기별 행사처럼 남편 없는 자리에서만 내집이니 너희 나가 살아라 너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시는 시모와
너 나가면 나 죽어 버릴 거야 하는 시부...
흐...
그래도 나왔어야 한다는 게 내 지금의 결론이다.
다시 산다면 나는 혼자라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시부는... 시모는.. 나를 그렇게 내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남편은 아니 적어도..  
아무튼...
내가 책임질게..
내가 너희들 하나 책임 못지겠냐시던 시부님의 말을 제대로 들어 먹었더라면
나는 그렇게 시모한테 주눅 들어 살지는..
동서들한테 시동생들 앞에서 그렇게 작아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결국 애들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내게 많이 약한 모습을 보이셨고,
그랬다... 
그리고.. 다른 자식들은 걱정이 없는데.. 하시면서 남편 걱정을 그렇게 하셨다.
그러게 좀 자유롭게 아니 사람답게 살게 좀 놓아주시지...
다른 자식들은 
새로 시작할 때 집 주고 차 주고 하시더니
남편에게는 돌아가시면서 집 주고 땅주셨다.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자식들은 형이 많이 가져갔다고 한동안 
불퉁 거렸다.
그때는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고, 그냥 내 입장은 그랬다.
남편은 또 달랐겠지만..
난 이미 온몸과 마음이 숯구덩이였으니 말이다.
그땐 몰랐다. 아니 얼마 전까지 몰랐다.
큰아들 큰아들 하시더니..
큰아들이 농사 지으니 주셨나 보다.. 했는데
애들 할아버지도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날개를 꺾은 것을 후회했구나라는
친정부모 들먹이며 며느리 뭉개 버리려 하다가
제발 좀 그렇게 해달라고,
우리 엄마 아빠도 나 어떻게 사시는지 좀 알게 전화해서 말씀 좀
해 달라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안 보이시느냐고...
돈을 벌어다 주느냐, 애들을 이뻐하느냐 내게 잘하느냐..내맘대로 살기를 하느냐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사느냐고 박박 대들며
너 이러고저러고 흉 잡아 친정에 전화해 물어 보겠다시던 시부
입 꾹 닫게 했던 그때 내 울부짐이... 휴...
난 아직도 가슴이 뛴다..
아버지 말기 선고받으시고.. 대학병원 모셔야는데
눈은 펑펑 오고.. 병원은 새벽에 도착해서 검사받아야 한대고...
병원 10분 거리 딸래 집.. 눈치만 보고 있는데
시부.. 나는 아픈 사람 집안에 들이기 싫다.. 하셨다. ㅎ.. 아픈 사람..
사돈도 아니고 아픈 사람..
그렇게 엄마는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전날 버스 타고 오셔서 병원 근처
지금도 잊히지가 앉는 금호장여관에 하룻밤 묵으시고
그 담날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렇게 막말하시더니..
당신 돌아가 실날 받아 놓고 엄마 병문안 왔을 때...
엄마한테 그러셨단다. 딸 내 집 가서 주무시고 내려가시라고... ㅎ..
엄마는 그러셨다지 다음에 사장어른 건강해지시면 한 번 가겠노라고...
그렇게 울아버지는 이 집구석 한 번도 못 와보고 돌아가시고,
언니는 동생은 한 번 왔다 갔다.
엄마는 두 번.. 
흐...
지금도 울 어머니는 엄마가 혹시 이 집구석에 놀러 오신다 할까 봐서 
아예 말도 안 꺼내고,
울 엄마는 안와 버릇 해서 
오려하지도 않는다.
요즘 세상에 다국적 며느리들도 다 친정식구 들락 거리는데 말이다.
그렇다..
왜 그러고 미련하게 살았는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는지..
며칠 전 염색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우연찮게 한가한 미용실에서  원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원장님도 첨에 모시고 살다가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
알아서 하라고, 나랑 같이 나와 살던지 아님 거기서 애들 데리고 살던지
하고 친정으로 가 버렸더니 한 달 반쯤 되니 애들 데리고 찾아왔더란다.
그 뒤로 분가..
지금은 홀로 되신 시모 모시고 사는데..
내 집에 모시고 사는 거랑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얹혀사는 거랑은 마음부터가 다르다며..
그렇구나.. 
나는 얹혀 사는 거라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혹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힘들었구나 싶다.
애들 할아버지 애들 아빠 주저앉히며 
내가 책임질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돈을 쥔 자가 왕이고, 돈 가진 자 옆에 천둥과 번개를 주관하는 속 좁은 하늘이
더 큰 우주이니 것을 두려워하면서만 살았으니
어깨는 굳고, 몸도 마음도 이렇게 되어 버렸겠지.
지금의 더없이 열심히 사는 남편
더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시부 돌아가시고도 제법 
많은 것을 잃은 다음의 변화였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옛말 하며 살 수 있어서..
아니..
이제 옛말 그만하려고..
이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싶다.
조금만 건드리면 피가 나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아닌
좀 딱딱하고 보기 흉해졌지만 건드려도 아무렇지 않은 흉터가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으리라..
흉터마저 사라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놓아야지 않을까.. 싶어..
여기에 내려놓는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 미숙한 삶의 길..
엉키어진 실타래
그리고 잘못 자라난 나뭇가지처럼 비뚤어진 관계...
어느 만큼은 인정하고, 어느만큼은 포기하고,
또 어느만큼은 세월에 맞기듯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조심스럽게 풀어가야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밤도 생각이 참 많다.
너 그래도.... 어쩌고 저쩌고 시작해서...
그거 몰라?로 시작된 과거 팔이.. 이제 그만해야지 싶다.
가을이 깊어간다.
밤이 깊어가듯..
내일 아침이면 또 지워질 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여기 적어두고 잊기로 하고 싶다. 
정말이지. 잊어도 좋을 기억들이 내 속에는 너무도 많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그래도 과거 팔이는 이제 그만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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