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밤 열한 시다
뜨개질하고 있는 것이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아서
잡고 있다 보니 늦어졌다.
더 늦으면 게으름에 노트북 앞에 앉는 걸
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손을 놓고 앉았다.
한 번 빼먹는 게 쉽지 무너져 내리는 건
허술하게 쌓아 올린 돌담 같다.
내게는 그렇다.
구운 김과 꼬마 캔하나
깊어가는 겨울밤
그래.. 이렇게 별 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도
참 괜찮은 것 같다.
하루를 마무리 짓고
또 하루를 준비하는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를 있게하는 가느다란 뼈대 같단 생각이 든다.
보리굴비...
우리는 아니 남편은 조기나 굴비정도는 좋아하는데
북어나 코다리나 보리굴비같이 바짝 마른 생선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북엇국도, 코다리 요리도, 고급음식으로 불리는 보리굴비도
별로다.
나는 워낙에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남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어쩌다 명절 선물로 보리굴비가 들어와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는 했었다.
내가 그걸 잘 못 다루는 이유도 있겠지만
남편 혼자 먹게 되니 자꾸 뒤로 처지는 것도 있다.
간고등어를 쪄서 내놓으면 남편 혼자 먹는다.
같이 먹어 주면 좋을 텐데 나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가리는 음식이 많다 보니 맛있게 먹을 음식도
그저 그렇게 먹게 되는 남편에게 가끔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절 선물로 보리굴비가 들어왔다.
제법 튼실한..
어쩔까? 남편에게 물으니
한 번 먹어보자~ 한다.
지난번에 먹다가 말았잖아. 했더니...
이번에는 한 번 먹어보게.. 남들이 좋아하면 좋아하는 이유가 있지 싶다.
하더라고..
그래 그러자 했다.
조금 더 인터넷 찾아보고 공부 더 해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내 취향이 아니어도 젓가락 몇 번은 거들어야지 싶은
생각이 든다.
술도 안 좋아해서 술도 같이 못 마셔주고...
아니 나는 여럿이 떠들며 마시는 거 보다는 이렇게 조용히
혼자 앉아 가볍게 밍밍하게 꼬마 캔 하나면 좋은데
남편은 과하게는 아니어도 그 분위기와 그 분위기에 어울어진 사람들과의
수다를 즐기는 것 그 차이 같기는 하다.
지난 토요일 동생 내외가 주고받고 하는 것을 엄청 부럽게 바라보던 남편...
내가 좀 옆에서 홀짝여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남편이 더 행복했을지도 아니 밖에서 술을 찾는 일이 조금은 덜 했을지도
싶은 마음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계기였다.
술도 한잔씩 같이 하고...
생선구이나 뭐 그런 것들도 못 먹는 건 아니니 같이 거들어 주는
애를 좀 써 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강한 색채의 사람 같다.
아닌 건 아닌거고..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아니어도 너를 위해서.. 못하는 것도 노력해보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하고 다르다 느끼면서..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 뿐인데..
어쩌면 그사람이 틀렸다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냥 다름인데 말이다.
찌개 그릇을 식탁 한가운데 두고 앞접시에 덜어 먹었었는데..
그냥 각자 그릇에 담아서 상을 차리니
내 몫의 것이 생기고 어쨌건 먹게 되더라는 거지..
그렇게 나는 오늘 평소에는 손도 잘 대지 않는 찌개로
세 끼니를 다 해결했다.
그러니 확실히 찌개가 줄어드는 게 보이더라고..
그래.. 그래야지..
습관을 좀 바꿀 필요가 있어.
뭐든 좀 잘 먹고 보자 싶다.
소화는 그다음 문제야.
안 되면 소화제 먹음 되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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