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듯한 봄날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햇살도 방글방글
나무엔 연둣빛 여린 잎이 귀엽기만 하다.
여름 나무는 건강하고 거대해 보이고
가을 나무는 아름답고 처연해 보이고
겨울나무는 쓸쓸해 보여서 좋다.
봄 나무는 그냥 좋다.
죽은 듯 있다가 슬그머니 피어 올리는 여리디 여린
나무 빛깔도 좋고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도 너무 좋다.
봄 하늘, 봄 바람, 봄 비 그리고 햇살..
나는
내 나이쯤이면 계절의 어느 만큼쯤일까?
나이... 아니 아닌 것 같아.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모르는 뭔가.. 뭐 그런..
어디만큼쯤 가 있을까?
여름은 아닌 것 같고...
상식선에서는 가을 중간 어디쯤?
아니면 가을이 깊었을까?
요즘은 하도 오래들 살아서 가늠하기가 쉽지가 않다.
오십 너머 봄이 좋아진 것 같다.
봄.. 그전에는 바람 때문에 별로라 했었다.
유난히 많은 바람이 나를 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 붙이는 것 같아서..
길어지는 낮도 싫었다...
나는 없는 것 같은 내 인생 낮이...
화사한 꽃도 아지랑이도 별로였다.
난 아직 한 겨울인데 세상은 꽃들은 사람들은 봄이라고 환호하는 것 같아
더 그랬던 것 같다.
오십이 너머.. 철이 들었나..
그냥 어느 때부턴가 좋더라고...
바람 끝은 차가운데 그 안에 살뜰히 숨어 있는 포근핸 햇살이
좋았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들판에 들꽃이 피어나는 것이
잎보다 더 어리고 여린 꽃이 아무리 추워도
꽃봉오리를 피우며 화사하게 웃어 주는 것도..
비 내리면 저 빗소리에 내일은 또 어떤 새싹이 돋아 날까
기대하게 되는 것도.. 좋더라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생각이 바뀌게 된다고 하지만
또 생각에 따라 환경을 바라보거나 받아들이게 되는
방법도 달라진다는 건 너무나 단순한 사실인 것을
나이 들어가면서 깨닫는다.
가끔 잊어버리고 헤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문득문득 제자리를 잡아 주는 나이라는
경험의 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오늘은 결혼기념이란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 그랬다. 결혼기념일이라고..
서른몇 번쯤 지나고 나니까 나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날이 되었는데
남편이 챙기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다.
난 그냥 평범한 게 좋아.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남편이 오전에 다른 볼 일이 있어 쉬는 날
오후엔 텃밭을 정리하는
남편 옆에서 풀도 뽑고, 내 할 일을 하며 이런저런 일상들을
공유하는 오늘 같은 날..
외식하기로 했는데 땀 흘리며 일하고 나서 귀찮아하는 남편과
수육 사다 삶고, 마트에서 사 온 편육으로
남편은 소주 나는 캔맥 하나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눈 오늘..
오고 가는 특별한 그 무엇은 없어도,
그냥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있어 좋았다.
참 오래도 같이 살았네
되돌아보면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50년만 더 건강하게 같이 살자는 남편에게
50년은 너무 길다~ 하며 웃었다.
언제까지 보다는 어떻게에 더 중점을 두고
봄날 같은 날들이 쌓여 갔으면 좋겠다.
가끔 꽃샘도 있고, 찬 비도 내리고,
어쩌다 봄눈이 쏟아져 난감하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금세 햇살 반짝에 모두가 평화롭고 여유로워지는 봄날 같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유지하며
그렇게 살면 좋겠다.
오늘도 한 시간 하고 조금 더 남았네..
엄마는 오늘도 무단으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집 짓기에 여념이 없는 제비와 두뇌싸움을 하고 계신다 했다.
현관문 앞 처마만 아니면 내 버려두겠는데
댓돌 위 현관문 위에 열심히 집 지으려 용을 쓰고 있다는
그 제비도,
그 제비가 가끔은 안쓰럽고, 또 많이 성가시고 그렇다는
울 엄마의 봄날의 바쁨은 제비가 한 몫하고 있다.
그 제비 기억력 참 나쁘다.
작년에 그리 고생했으면 열 발자국만 옆으로 이동해서 짓지
그걸 그리 모르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