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한 커피 한잔 들고 꽃 보러 가려 현관문을 열었더니
비가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따라 나오던 멍뭉이는
에이~ 비 오잖아. 하고 멈춰 서고
그래 너는 여기 있어 엄마 금방 한 바퀴 돌고 올게~
작은아이 대학시절에 쓰고 다녔던 ,
모양이 살짝 틀어진 투명 우산을 들고 마당을 서성인다.
어제와 똑같은 꽃밭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꽃들
눈에 익숙한 것들이 아침 인사를 한다.
겹이 많은 매발톱이 하나 더 피었어. 아마.. 살몬색 같기도 하고
하얀듯 핑크인 듯 한 매발톱이 수줍게 눈인사를 한다.
살몽색이면 좋겠다.
안 그래도 한 포기 사다 심으려 했었는데 말이다.
어제도 보았잖아. 그저께도 봤고~ 하며 청보랏빛 매발톱도
황철쭉이라고도 하고 아홉 송이가 모여 핀다고 해서 구봉화라고도 하는
정말 화사한 꽃송이가 큰소리로 인사하는 듯하고...
아네모네도 꽃을 물고 있고, 네모필라도 딱 한송이 피었다.
차가플록스가 한창이다.
아.. 산딸나무 너무 이뻐..
너무 이쁜 거야.. 처음엔 마악 봉우리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는
이게 꽃이여 꽃 진 자리여.. 싶었는데 색이 좀 옅어지기는 했지만
참 화려한 봄꽃이다.
어제 포기 나누기 해서 심은 원평수국도 이번 비에 제대로 자리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텃밭 정리하면서 뽑아 옮긴 사계패랭이도 오늘 비가 약비가 되어 주길
기대한다.
아직 장미조팝도 늘어져 있고.. 버바스쿰? 도 예쁘네 제대로 꽃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거실에 있던 캄파눌라는 오래 보고 싶어서 꽃밭에 옮겨 심었더니
아직 적응 기간이 필요한 가 봐
밤이슬도, 봄 비도 바람도 그리고 미세먼지도
힘든 것 투성이라는 듯 힘들어하고 있어.
그래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보고 싶으니까 잘 적응하길 바라고 있다.
비가 잠시 쉬어 가나 싶더니 다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비가 내리면 그냥 마음이 서성이는 버릇이 있다.
그 서성임을 그대로 받아 줄 아직은 빈곳이 더 많은 어설프지만
곱고 예쁜 꽃밭이 있어서
커피 한잔이 있어서..
나만 바라보는 멍뭉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느티나뭇가지를 옮겨 다니기도
이 비에 전깃줄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저 아이 이름은 뭘까?
텃새라는 거 머리가 까맣다는 거 밖에는 가까이서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때까치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이름을 알면 이름 불러 주면 좋으련만...
네이버에 물어보니 물까치라고 알려주네
맞는 것 같기도 해.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폰 오디오 소리를 줄였다.
빗소리 만으로도 참 좋은 날이다.
어! 저기 명자나무 뒤에 매발톱이 피었네
아까 못 봤는데..
저 아이도 햇살이 보고 싶어서인지
나도 있어! 하고 손 들어 인사하는 듯 키가 훌쩍 큰듯도 하고 깨금발 딛고 있는 듯 하기도 해
이따 비 살짝 쉬어 가면 나가서 인사하고 와야겠어.
그 습하고 좁은 그늘에서 피어줘서 고맙다고...
비 온다..
커피잔이 비워져 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비가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
저 땅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아직 게으름 피우고 있는 뭔가의 새싹들에게
봄! 봄이야~ 하고 흔들어 깨우는 알람일 수 있도록...
가끔 내리는 봄비는 참 좋다.
커피가 끝났다.
몽글몽글 초코빛이 섞인 거품만 남아 있다.
간만에 달달한 커피도 맛있네
비가 내려서 그런가 봐..
우산 들고 마당이나 한바퀴 휘이이 돌아 들어 와야겠다.
저.... 산딸나무는 정말 예술이야.
신의 한수였어.
키도 많이 부담스럽지 않게 자란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산딸나무 아래에 매발톱도 물론 예뻐.
매발톱을 너무 좋아해서 씨앗을 있는대로 뿌렸더니
매발톱이 참 많다.
어느만큼은 앞마당 텃밭 가장자리로 옮기야지 싶다.
빗소리가 너무 좋은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