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괜찮은 오늘 2024

댓돌위에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그냥. . 2024. 9. 21. 23:53
엄마네 마당에 비가 내리고..

댓돌 위에 신발들이 가지런하다.
엄마 슬리퍼만이 급하게 움직인 엄마의 몸짓의
흔적인 듯 흐트러진 채 
한 짝은 뒤엎어져 있고 엄마의 샌들은
다른 운동화들에 밀려 토방에 내려앉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아침이었다.
내리는 빗물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엊저녁에 엄마랑 통화를 하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아예 까맣게 잊었었구나..
뭐 특별한 일이나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엄마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주룩주룩 비 내리는 날 오전이면 분명히 엄마가 
집에 계실 것 같아서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받으신다.
비 많이 온다고.. 너무 많이 온다고...
엄마는~ 비 너무 안 온다고 걱정하더니 이제 너무 
너무 많이 와?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외숙모께서 아들 딸 사위 그리고 며느리 될 아가씨를
인사 시키러 어제 외할머니 댁에 내려오셨는데 
오늘은 엄마 집에 오시고 계시다는 연락을 받앗다고,,
서울 다녀와서 몸도 피곤하고 해서 집도 어질러져 있고
반찬도 없는데 걱정이라 신다. 
엄마 밖에 나가서 먹으면 되지~ 엄마가 사! 했더니
엄마가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섯이나 오는데 엄마가 그 차에 탈 수 있겠느냐며 걱정이시다.
뭐.. 택시라도 부르면 되지~ 
한참 통화를 하고 있는데..
어!! 벌써. 오네 ... 하면서 엄마가 전화를 끊자 하시는 말씀 뒤로 어서와 어서들 와 하는 엄마의 달뜬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비랑 눈 맞추며 놀다가 궁금함에
시시티브이를 들여다봤더니 저렇게 손님 신발은
댓돌 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엄마 신발은 아래에 있고..
엄마가 그분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보이는 듯하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 동안 댓돌 위에 신발이 있어서
어찌어찌 집에서 밥을 해서 대접하셨나? 싶었다.
혼자 사시고 연세도 있으시고.. 마트도 없는 시골인데...
하면서..
저녁에 물어보니
시내에 사시는 삼촌이 일찌감치 오셔서 같이 나가 밥 먹었다고..
반가웠고 다녀가서 시원하다고..
아가씨가 아주 참하더라고.. 아기 같다며 
아주 밝게 말씀하신다.
외삼촌이... 엄마하고 얼마나 특별했는지 외숙모도
그 아들 딸도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 특별한 손님이다.
엄마 같은 누나.. 아들 같은 동생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외삼촌은..
외삼촌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결혼도 못 시키고 코로나 직전에 
돌아가셨다. 그때 그 엄마의 통곡은.. 마치 자식을 잃은 혹은 남편을 잃은
사람 같았다.
한참을 힘들어하셨는데
세월이 약이라고 엄마의 걱정 주머니는 엄마의 손등처럼
주름도 많아지고 탄력도 일어서 쭈글쭈글 작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오래 길게 걱정하시는 일이 많지
않아 다행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게 세상의 이치겠지.
지금도 그 걱정 다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면 엄마의 어깨는
엄마의 허리는.. 엄마의 심장은 다 타고 녹아 없어져 버렸을 거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나이가.. 세월이 만들어 주는 주름도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걱정 주머니도..
나이는 신체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깃든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비가 내려서..
선풍기기 없어도...
덥지가 않다....
진짜 가을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는지
풀벌레 소리도 고요하네
저... 멀리서 아주아주 조그맣게 들려..
가을은 이렇게 내 창 안으로 훅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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