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언제 엄마랑 커피 한잔 마시자 커피 전문점 가서.. 했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기까지 나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 커피 마시자~ 하며 대답하기까지 한 달 정도가 지나갔던 것 같다.
커피는 늘 집에서 마시는 걸로 알았던 아이에게 엄마의 커피 한잔 사 달라는 말이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느만큼의 무게감 있게 느껴졌던 모양인지
아들에게도 어느만큼의 시간은 필요했던 것 같아 보였다.
아니면 아이 말대로 날이 선선해지니 운동 새로 시작해서
바빠진 이유도 있었겠지.
그동안 제법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만 하는데도 가슴이 울렁 거리고 알수 없는 울컥함이
오히려 이야기를 잘못 꺼내서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생각이 많아 정리가 잘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정리하고 진정시키는데 내가 가졌던
시간과 아들에게 던져 놓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제법 많이 차분해졌다.
그동안 지워진 기억들을 되돌려 보려고 일기장을 뒤적여 보기도 했고
추석에 집에 온 작은 아이에게 먼저 말을 꺼내 물어보기도 했다.
다행인지 작은 아이는 그런 거 없는데 아빠랑은 좀 그런 것 있었는데
엄마는 없어.
형은 혹시 모르겠네 했었다.
그렇게 큰아이랑 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커피 마시자고 한 건 하고 싶은 아니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야. 너도 눈치 챘겠지만..
아니 뭐 그냥 그렇게 크게 생각은 안 했는데!
그냐.. 엄마는 왜 이렇게 긴장이 되냐..
뒷집 아줌마랑 이야기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어
그 아줌마랑 친정 엄마하고는 스무 살 차이 밖에 안 난데
자기는 큰 딸이고 밑으로 여동생 둘하고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엄마는 큰딸인 자기도 어린애인데 늘 어린 동생들 돌보고 챙겨야 한다고 하면서
엄마가 힘들면 풀곳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자기한테 상처를 주었다고 하더라고 자신도 어린아이인데 큰아이 노릇 해야한다는 식으로 대했었다면서
물론 엄마가 시집살이 심하게 했고 어렸고 힘들어서 그랬을 거라는 거
알지만 상처 많이 받았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엄마는 그거 모르더라며 지금은 큰딸이라고
만만하지 않다며 어려워만 한다고
그래서 엄마랑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게 편하지도 않다고 하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엄마도 네게 그랬겠구나 싶은거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도 쉽지 않게 살아왔잖아.
살아왔다는 말보다 살아 냈다는 아니 어쩌면 버텨냈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을 만큼 힘들게 살았잖아.
그래서 말인데 엄마는 기억이 사실 없어. 엄마가 살려고
지워버렸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는 잘 모르겠어 그런 엄마삶의 고단함을 너에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어 그랬을 것 같아.
그땐 엄마 주변에 엄마 하소연을 들어 줄 사람도 없었고 늘 너희 밖에 없었잖어..아무래도 큰 애인 니가 그 파편들을
다 받아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은거야.
그래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어.
그런 마음에 박힌 말이나 안 좋은 기억 있지 않아?
엄마 나는 뭐든 어지간 한 건 바로 털어 버리고 사는 성격이라 그런 거 없는데?
아니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고...
너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아내는 습관도 있고
상처도 받겠지. 어찌 다 털어 버려지겠니.
엄마도 어렸을 적에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생각해 보면
정말 싫었던 기억들이 있거든..
예를 들면..
외할머니는 외향적인 성격이고 사람들 좋아하고
외할아버지는 내성적인 데다가 약간 폐쇄적인 부분이 있었어..
겨울에 옛날에는 일이 없었잖아.
외할머니는 그때 이 집 저집 아줌마들끼리 몰려 다니며 놀았거든
그 집 아저씨들은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외할어버지는 좀 소심하기도 했고 사는 게 복잡하기도 해서 그랬는지
여자들끼리 모여서 밤늦게까지 수다 떨고 노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거든
근데 할아버지는 꼭 엄마랑 큰 이모 시켜서 할머니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내보냈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다..
내 보내는 할아버지도 싫고 그럴 것 알면서도 저녁이면
놀러 가나는 할머니도 싫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다른 두 분 성격에 먹고 사는 것은 힘들고
그런 저런 것들로 말이 거칠어지는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싸우느니 싶었을
할머니도 이해가 되고 아무것도 없는 집구석에서 애들이나 챙기고
앉아 있지 저녁마다 이집 저 집 몰려다니는 아줌마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할머니가 마땅찮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 할아버지도 이해가되기는 하는데
그땐 정말 추운데 남의 집 대문 앞에 서면 개가 먼저 죽어라 짖어 대는데
엄마 불러 대며 아빠가 찾는다고 이집 저집 찾아 다녀야 하는 일이 정말이지
싫었거든..
또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가계부를 썼는데
어느 날 외할어버지가 그걸 보시기에 칭찬 해 주실 줄 알았는데
니가 1년에 이렇게나 많이 쓰느냐며 야단하셨을 때..그 거..그런 거
정말이지 서운하고 마음 상했었거든..
또 이건 엄마 성격에 많은 영향이 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즐겁게 놀고 있으면 지친 엄마한테 더 혼나는 것 같았어 그래서 엄마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괜히 얌전한척 하곤 했었어
외할머니의 고단한 인생의 한숨 같은 것을 엄마는 그렇게 받아 들였던 것 같아
그런 거라든가 너는 어때?
엄마 그건 있지.
아빠가 술 많이 드시고 와서 실수했을 때
엄마가 며칠 집 나갔었잖아. 외갓집으로.. 그때 그런 기억은 좋지 않게
남아있기는 하지..
그래 그때는 아빠가 술 많이 드셨지.
엄마 입장에서는 너희들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였어
너희들 옆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의 발악이었지
그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거 그만하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그땐 그게 엄마가 생각한 최선이자 마지막 선택이었어.
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날 보다 그 이후의 날들이
더 무섭고 두려웠거든
그 뒤로 그렇게까지 꼬장 부리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것이 엄청난 큰 일이기는 했었지. 너희들에게도 큰 상처였을 거야.
엄마한테 그것이 최선이었다 해도 상처는 상처이니까..
그리고 내 경제권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할아버지나 아빠한테 배웠지. 그걸로 엄마 엄청 괴롭혔잖어.
그랬지. 그건 엄마만의 상처인 줄 알았는데 너희에게도
영향을 주었구나..
그것 말고는 뭐 그렇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없는데!
엄마 생각해서 그냥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이야기해 줘
혹시 엄마가 네게 화풀이를 했다거나 공부로 네 동생이랑 차별을 했다거나..
엄마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엄마가 그렇게 막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00가 워낙에 예민하게 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그 시기에 친구들이 늘 옆에 있었어서
그렇게 힘든 거 모르고 지나갔어.
공부는 모모가 욕심도 많고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에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엄마나 아빠보다는 할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그래 할아버지가 장손이라고 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좀 과하게 하시기는 했지.
할아버지가 힘들었어. 아빠는 모모하고 많이 부딪혔지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덜 부딪혔는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었겠다.
모모도 아빠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더라
언젠가 그러더라고 아빠가 다른 사람 됐다고..
그래 이제 아빠가 조금은 이해가 되냐고 물었더니 이해는 이해고..
요즘은 아빠가 어렵지만은 않다고 하더라..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서로 반사 이익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어떤 상호작용으로 어느만큼의 윤활류 역활을 했을 수도 있지.
네가 전역하고 해외여행 다녀와서 니 동생도 쉽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처럼..
니 동생과 아빠가 많이 부딪혀서 너는 한 발짝 물러 서서 그 파편들을 피할 수도 있었을지도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늘 큰아이라는 부담감 속에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엄마 내가 엄마나 아빠한테 안 좋은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면 직장을 여기에서
잡지를 않았겠지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잖아
자취하다가 내가 들어오겠다고 해서 집에 다시 들어온 거잖아.
아마 내가 편하지 않았다면 집에 다시 안 들어왔겠지.
어느정도는 대부분 그렇게들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집만의
문제라고 생각 안 했어. 다 그런 것 같았거든 친구들 이야기 들어 봐도
그래서 나는 괜찮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고맙기는 하지만..
어쩌면 넌 지금도 엄마를 생각해서 말을 아끼거나 속내를 다 털어놓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엄마 그렇게 물렁하지 않아 네가 엄마를 늘 너무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것 같아서
가끔은 속상해.
엄마 나는 그럴 수밖에 없어.
어렸을 때 부터 엄마가 어떻게 버티고 서 있는지 보고 자랐고
한 번씩 데미지를 크게 입은 엄마가 어떻게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어.
엄마가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잘 알았는데
어떻게 엄마를 신경을 안 써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빠까지 정말이지 대책 없었어 엄마!
지금이야 아빠가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나 싶게 변해서 이상하기까지 하지만
요즘은 엄마가 안정적으로 보여서 좋아. 아빠가 정말 아빠 같아.
요즘은 걱정 안 해.
아빠 정말 많이 달라졌지. 가끔은 겁난다니까
어제도 어찌나 엄마를 챙기던지 다른 사람들 보기 민망해서 그만 좀 하라고
그랬어 엄마가..
그러니 이제 엄마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면서 살아.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래 안 보여 네가 엄마한테 너무 조심하면 엄마가 오히려 니 앞에서
솔직해질 수가 없어.
조심하게 되는 거지 엄마도 너에게 조심하면서 신경 쓰게 하지 말아 줘.
그리고..
그래 너는 다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가 네게 알게 모르게 주었던 상처나
나쁜 기억들이 있다면 정말 미안해.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느 날 오늘 못 다 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지거나
문득 생각나는 아픈 기억이 있거든 이야기해..
같이 풀어 보자.
그려. 엄마. 엄마도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어쩌면 아들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듯싶다.
아들은 여전히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 불안한 시선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을 때가 있다.
문득문득 걱정스러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어 놓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아들도 어느만큼은 가벼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뭔가 쫌 아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걷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들은 아들 나름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철 없던 남편..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아들이 가장 큰 의무이자 네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으르렁대는 시 어른 들에게서...
겁 없이 호랑이 굴에 들어 가 놓고는 날마다 징징대고 죽을 상을 하고 있는 마누라나
아이들 곁에서 멀어지고 싶었을 마음..
나는 힘들어서 징징 댔지만
남편은 남편 나름 힘이 들어서 밖으로 돌았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사막 한가운데 나를 내버려 두고 두고 놀러 다니는 남자라고만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곤 한 번씩 불어대는 사막의 태풍은 나를 갈기갈기 후려 쳤었고....
그 모래태풍에 나에게만 불어 댔던 건 아니었다는 거..
아이들 앞에서 모래태풍에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엄마를 보여주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못할 노릇이었던 거다.
큰아이가 언젠가 했던 말..
엄마 우리가 어떻게 엄마 앞에서 삐뚤게 자랄 수가 있었겠어.
우리는 정말 속 안 썩이고 자란 거야 했던..
엄마가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오히려 내 보호막이 되어 준..
지금도 아이들에게 그런 짐 같은 것이 있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아들은 여전히 따듯하고 차분하고 포근해 보인다.
나보다 더 큰 가슴으로 세상을 안듯이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 엄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걱정이 되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싶다.
오늘 커피 한잔은 참 괜찮았다.
여러가지 맛이 오묘하게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 끝 맛은 달짝지근 했다.
그래서 다행이다.
내 삶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아들이 너무 고맙다....
상처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안쓰럽게 여기고 이해하려 애써주는 아들이 미안하고도 더없이 고맙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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