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그제 저녁..
열시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작은넘 모시러 가는 길..
마악 뒤안길을 달려 가는데 옥상에서 물이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양열 물탱크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우선 아들넘 부터 모셔와야 함으로 이따보자~ 하고
다녀와 보니 모임 나갔던 우리집 남자가 집에 돌아와 있다.
'자갸~ 옥상 물탱크 어디가 터졌나벼~'
'긍게 나도 오다가 봤어야~ 내일 고쳐야지'
'어떻게 물이라도 잠궈 놓아야 하는 거 아녀?'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잠그는 벨브 있냐?'
'있지 않겄어?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조그만한 손전등 하나 들고 옥상으로 보일러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벨브 찾아 잠궈 놨다.
벨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치..
우리집 남자는 기계치다.
폰이나, 컴이나......그런것들도 나보다 더.......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른척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들때도 있지만 암튼 그렇다.
다음날.. 아침..
'태양열 서비스 신청 했어?'
'아니...내가 고쳐야지~'
'고칠 수 있겠어?'
'어. 지난 겨울에 하는 거 봤잖어. 호스만 잘라내고 새걸로 연결하면 되는데
삼만원이나 받아 가드라고. 간단해.'
그러길래...좀...의심스럽긴? 했지만...해 본다니...
대견한 마음에 그러라 했다.
옥상에 올라가 어디 부분이 깨졌는지 찾아내고, 그부분 잘라서
부품사러 다녀오고.....
금새 끝난다던.......
이렇게 해 보고 ...저렿게 해 보고.....
'물 틀어 봐~'
'어..틀었어~'
'꺼라 꺼~' 하기를 수더 없이...ㅠ.ㅠ
데모도가 더 힘들어...
옆에 서서 사다리 올라가 있는 우리집 남자가
몽끼 달라면 몽끼 주고, 니퍼 달라면 니퍼 주고,
드라이버 달라면 드라이버 주고....
햇살은 따듯하고..
우리집 남자 올라가 있는 사다리 옆에 딱 붙어 서서 심부름 하다가....
하늘 올려다 보고 바람 즐기고.....먼산 바라보고....
그러다가...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손장난이나 하고 앉아 있기를 한참......
그러다가..
'자갸~ 나....빨래 널고 와도 돼? 세탁기 다 돌아 갔을텐디...'
'어 다녀와.'
'자갸...나.... 강쥐새끼들 물 주고 와도 돼? 똘이가 물 없다고 물그릇 물고 다니네.'
'어. 주고 와.'
그러고도 한참...
'잘 안되면....삼만원 다른데서 아끼고 써비스 부르지....'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을 돌기 시작했다.
왠지 못 미덥고, 불안하고....
한나절이 다 되어 가는듯 하고...보고 있는 나도 지치지는 사다리에 메달려 있는 사람 얼마나
지칠까...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냥 서비스 부르지....'라고 말 하려는 순간..
'물 틀어 봐' 하길래
쫄래쫄래 계단 내려가 물들어가는 벨브를 열었다.
그러고도 한참...
'물 틀었냐?'
'어.... 진작에 틀었지. 안 새?'
'어.안 새네. 됬다.'
'ㅎㅎㅎ 욕봤으요~ 우리 신랑 이제 이런 것도 잘하네..' 했더니
시원하게 물한잔 마시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우리 아버님은 손재주가 제법 있으셨는데..
우리집 남자는 아버님 안 닮았다 ,
손으로 하는 건 뭘 해도 어색하고 불안하고 했었는데
요즘 우리집 남자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 종종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하면 또 꼼꼼하게 아주 잘 한다.
나이 마흔 일곱의 우리집 남자가 이뻐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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