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9

내 가방속에 봉투하나

그냥. . 2019. 9. 21. 20:07

추석 다음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동생네를 위해 늦은 아침을 먹었다는 엄마는 우리를 위해 시간 맞춰 가스에 밥을 올리셨다.

명절은 이십육년차 내게도 피곤하고 버거운 일이듯이 셀수도 없는 엄마의 그것 또한 만만하지 않을텐데

울엄마는 자식들 앞에서는 늘 씩씩하시다.

오히려 엄마 그늘아래 찾아든 나는 늘어지는 내 몸뚱아리를 세우느라 엄마 눈치를 살피고 머릿속엔 온통...

들어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여서 엄마도 쉬시고 나도 쉬고 싶다며 서둘러 엄마네를 나왔다.

집에 도착해 마악 현관을 들어서는데 큰넘이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민다.

'이거 할머니가 엄마 드리레.'

'뭔데?'

'몰라. 돈 같은데? 약이라도 해 먹으라고.."

아까 엄마네서 커피 마실적에 조용히 큰넘을 부르더니만 큰넘 손에 봉투를 지워 주셨나부다. 큰넘은 어쩌지 못하고

그걸 들고 온 것이고..

'뭐야 받지 말았어야지.

'할머니가 주시는데 어떻게 안 받아.?"

얼껄에 봉투를 받아들어 들여다 보니 오만원짜리 하나둘 다섯 여섯.....세다가 눈물이 툭 터졌다.

'미쳤나봐. 뭐야. 엄마가 돈이 어딨다고 이게 다 뭐야. 내가 어떻게 엄마 돈을 받아.'

'엄마. 할머니가 엄마 약이라도 한재 해 드시라 그러든데.'

'무슨 할머니 돈으로 약을 해 먹어. 할머니가 돈 나오는데가 어딧다고. 고대로 통장에 넣을꺼야. 할머니 정말 미쳤나봐'

설움이 폭발을 했다. 아니 설움이 아닌 엄마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엄마 사정 뻔히 아는데 어떻게..내가..싶은 마음에 불쑥 화도 나고 엄마한테 딸이 얼마나 엉망으로 보였으면

이러실까 싶어 속도 상했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전화도 못하고 있는데 다음날 낮에 전화가 왔다.

내가 엄마 말에 수긍해 버릴 것 같아서 엄마 그 귀한 마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 허트로 써 버릴것 같아서 안 받으려다가 받았다.

"딸~ 아직도 피곤하냐?'

'아녀 엄마. 엄마는 좀 어떠세요?'

'엄마는 괜찮아. 오늘 웃마당 배추 심은데 풀 뽑았다.'

'엄마는 오늘 같은날은 좀 쉬고 내일이나 하지...

그건 그렇고 엄마 뭐여. 이게....나 이제 엄마네집아도 안가고 전화도 안하려고 했는데...'

'괜찮아 딸, 엄마가 딸 약한재 해주고 싶어서 그래야.염소를 먹던지 홍삼을 내려 먹던지 뭐든 좀 먹어봐라

왜 그렇게 마른다냐..'

'엄마가 안그래도 나 홍삼 먹고 있고, 또 약 해 먹을거야. 암마는 왜 그래 속상하게  엄마 먹고 살기도 버거울텐데

돈 나올데도 없잖어..'

'돈이 왜 없어. 국민연금도 나오고 노령연금도 나오고. 엄마 돈 있어. 엄마 걱정하지 말고 약 먹어 봐.

엄마가 해서 보내주고 싶은데 딸이 잘 먹을까 싶기도 하고 잘 맞을까 싶기도 해서 지난번에 김치 가지러 왔을때

주려다가 그때 주면 명절때 내놓고 갈것 같아서 어제 준거야 약한재 해 먹어라'

'싫어 엄마. 내가 엄마 돈을 어떻게 써. 그리고 내가 엄마보다 훨씬 잘먹고 잘쓰고 살아. 엄마가 안 그래도

된다니까.. 다시 통장에 넣을꺼야.'

'딸..너 통장에 다시 넣기만 해라. 엄마 진짜 속상하다. 엄마 속상하게 하지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엄마가 딸 약한번 못해준다냐'

'엄마는 내가 어떻게 편하게 생각해 엄마 돈으로 약해먹으면 그게 약이 되겠어. 마음 불편해서....'

목이 메여서 더 말할수가 없었다.

'딸...괜찮아. 엄마가 처음으로 너한테 해주는 건데 약 먹고 살 좀 찌면 돼야...속상걸도 쌨다. 뭐가 속상하다냐 엄마 더 늙으면

해주고 싶어도 못줘야. 엄마가 해주고 싶어서 그랴.'

그어떤 말로도 엄마를 이길수 없다는 거 알고 그러겠다 했지만 난 아직도 그 봉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엄마 마음 안 상하게 돌려 보내 드리나...싶은 마음뿐이다.

사실 올핸 일이 많았다.

남편이 이십년 넘게 알고 지내온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평생 죽어라 용을쓰고 별 짓을 해도 내것이 될 수 없을 만큼이 사라져 버렸다.

하루아침에 그사람이 사라졌대...라는 소문과 함께 흔적도 없이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금전문제에 관해서는 결벽증이 있다 싶을만큼 철저한줄 알았던 우리집 남자의 허점이 그제서야 들여다 보였고, 

그렇게 그런 금전거래는 하는게 아니라며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늘이 두쪽나도 그럴 사람 아니라고

두둔하고 강한 믿음을 보였던  그사람의 실체가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소문만 무성하게 남긴 채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꺼진다는게 이런 거구나... 내 정신도 차리기 전에 우리집 남자에게는  그 충격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일상이 무너지면 남편이 설 곳이 더 없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 망가지는건 시간 문제일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 잠을 못자면 같이 안 잤고,  남편 안먹으면 같이 안 먹겠다고 버티며 몇날 며칠을 누릉지 끓여 대며 싫은소리 한마디 잔소리 한마디 못하고 평상시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티나지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무일 없었다는 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사고 친 넘이 더 죽고 싶을 거라고 남편도 달래고 나도 달랬다.

단 두가지만 남편에게 부탁했다. 술 많이 마시고 이 일을 입밖으로 내지 말라는 것과, 일상이 무너지면 우리의 세상이 무너지니

하던 일은 그대로 해 가자는 것, 그리고...또하나 이번 기회에 모임 좀 줄이면 싶었지만 그것은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빚을 진 것은 아니니까 , 큰넘 직장 다니고 작은넘 하나 남았으니 열심히 살면 문제 없다고 인생공부 크게 한거라고

생각하자고 더 나이 먹기전에 지금 터진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서로를 위로하며,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화를 눌러가며 석달 째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내게 어지럼증으로 세상이 뒤집히는 메니에르에 의한 발작이 오랜만이라며 찾아왔다.

큰넘이 몸관리 안하고 병원 안간다고 아는 병이 다가 아니라고 버럭버럭 하는 바람에 큰넘 달래려고 했던

국가건강 검진에서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지 한달 반...

그래서 그렇게 체중이 줄고 피곤했구나 싶었다. 이유를 알고나니 오히려 후련하다 싶고 갑상선쪽이야 뭐....싶어 사실 별 감흥도 없는

수술을 이십여일 앞두고 있지만

엄마는 딸래미 집이 휘청할 만치 큰 일이 있었던 것도, 딸이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시면서

어떻게 그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마음을 다해 챙겨 주시는지 눈물이 났다.

지금도 봄이면 열무에 얼갈이 김치 담가 주시고, 머위대로 깨국도 끓여 주시고, 명절이면

엄마집에서 날라오는 크고 작은 김치통이 일고여덟개는 기본으로 엄마 덕으로 살아가는 오십도 넘은

머지않아 며느리 볼 나이인 딸이 뭐가 그리도 안쓰럽고 못잊히는지 엄마 속내를 다 짐작할 수가 없다.

내 가방속에는 만질수도 들여다 볼수도 없는 엄마가 주신 세다 말아 얼마가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는

봉투가 들어가 있다.

여름을 살아내며   40킬로그램대가 무너졌던 몸무게가 내 가방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엄마의 좋은 기운 때문인지 더이상의

내리막길을 바라보지는 않는것 같고 집 나갔단 입맛도 돌아오고 몸챙기기에 열을 내고 있는 중이다.

엄마 정성, 마음.. 그거 거절하는 것도 잘하는 거 아니라는 거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난... 도저히 그걸 내손으로 쓸수가 없다. 엄마 좋은 기운만 받고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 드리는 방법 뭐 없을지...

우리집 남자가 그런다. 그걸로 자네 약 해 먹고 다른걸로 더 챙겨 드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만 난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냥.그래...엄마가 주신 것은 받고 내가 더 해드리면 되지 싶지만 사는게 어디 그런가 금새 나 살기 바빠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말거라는 걸.. 그래서 그럴수가 없다.

언제까지 내 가방속에 그렇게 엄마의 마음이 정성이 거기 그렇게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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