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청국장 띄워 놨으니까 안바쁠때 와서 가져가라~"하고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우리의 가을은 늘 그렇게 엄마가 손수 농사 지어 만들어 주신 청국장을 가져 오면서 부터 시작 된다.
다행이다 싶었다.
안그래도 한동안은 엄마 보러 갈 수 없을테니 병원 들어 가기 전에 다녀오면 딱이네 싶었다.
그렇게 엄마네 다녀와서 갑상선암 수술을 하러 병원에 들어갔다.
뭐 별거 아니라는데 그래도 나쁜넘들 중에서는 젤루 순한 넘이라고들 해서 그런지 정말로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이상할 정도로 무감각했다.
입원하는 날. 언니가 내려와 주었다. 코골이 때문에 걱정하는 남편을 집으로 보내고 언니랑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니 참 좋았다.
수술당일 마음은 무리가 없는데 누워서 침대 타고 수술실로 가는데 멀미가 날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 뿐
별 무리 없이 병실에 돌아오니 걱정스러운 얼굴의 남편과 아들과 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밤 근무 들어가야 하는 언니는 급하게 수원으로 올라가고...아마도 한잠도 못자고 밤꼬박 세며 일 했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다음날은 남편이 오후에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나 혼자 있어도 된다고 했건만...이미 사흘씩이나 휴무를 맞춰 놓은 아들넘이 오전 일찌감치 왔다.
"아들~ 집에 가서 쉬어. 강아지도 혼자 있으니까. 엄마 괜찮아,"
"엄마 말 많이 하지 마....그리고 난 여기서도 쉬는거야. 신경 쓰지 마. 엄마 이거 봤어?'
하며 괜찮은 웹툰이라며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보란다.
폰하고 놀고 있는 아들넘...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나....
암센타라 그런지 병실 분위기가 무겁다. 이러다 난생 처음 개미 기어가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엄마......
나오지도 않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딸 목소리가 왜 그러냐. 어디 아프냐?"
'엄마 나 감기 걸렸어. 괜찮아. 목소리만 그래.'
'아니 감기를 얼마나 심하게 걸렸기에 목소리가 그래. 약 먹었냐?"
'먹었지 그럼. 주사도 맞았어.'
'딸..사위는 어디 갔냐?'
'어 오늘 교육 있다고 그랬는데. 점심 먹고 교육 갈꺼야.'
'한산이는?'
'한산이는..어디 나갔나 봐 집에 없네. 왜 엄마.'
'아니..엄마가 대학병원 가는 길이거든 동네 아줌마 하나가 거기 입원해 있어서 병문안 가는 길이야.'
'대학병원에? 지금 어딘데. '
'지금 전주 다 왔어. '
'엄마 동네 사람들이랑 같아 오셨어?'
'아니 엄마 혼자 왔지. '
'뭐야 엄마. 어떻게 대학병원에 혼자 와. 잠깐만 한산아빠랑 통화 해 보고..'
남편한테 바로 전화 했다.
" 당신이 엄마한테 이야기 했어?
"뭔 소리야. 뭔이야기 ? 왜?"
"엄마 전주라는데 병원 오고 계신다는데.'
'나 어머니랑 통화 안했어. 걱정 하신다고 이야기 안 하기로 했잖어. 알았어. 내가 어머니랑 통화 해 볼께.'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언니가 엄마한테 말씀 드렸나? 그럴리가.....그렇다고 동생이 했을리도 없다.
엄마는 자식 걱정으로 하루가 짧은 분이신데 안그래도 말라빠진 딸년 때문에 걱정미 마를날이 없는데 말이다.
다시 남편 전화가 왔다.
'엄마 대학병원가는 택시 타셨다네. 한산이 내 보네' 라고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병원 로비에 섰다.
그 이름도 겁나는 암센타라는 거 보면 엄마 얼마나 놀라실까 싶어서 난 로비에 서 있고 아들더러 나가
본관쪽으로 해서 모시고 들어오라 했는데 금세 아들이 엄마를 모시고 들어온다.
유난히 하얀 머리카락의 엄마가 멍하니 촛점없는 눈빛으로 나를 찾으시곤 애써 발걸음을 재촉해 오신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니가 왜 병원에 있어. 수술은 또 뭐고..'
'엄마 별거 아니야..'
'아이고...말하지 말아라 말하면 안되겠다. 그래 한산아 엄마 괜찮은 거지?'
'네 할머니 엄마 괜찮아요.'
'근데 엄마 어떻게 알고 오셨어?"
'아니...나는 며칠 전에 청국장 가지러 왔다 갔는데 파김치를 꼭 가져다 먹었으면 좋겠고 늘 바쁜데 가지러
오라고 하기 뭐해서 대학병원에서 너그집 가까운 것은 알고 해서 왔지. 너는 이게 뭔 일이냐. 안춥냐. 어서 들어가라.... '
'괜찮아 엄마. 안추워 외투 입었잖어.'
'말하지 말고...엄마 가야겠다. 나오지 마. 엄마 택시타고 갈께...'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
'아니여 택시타면 금방인디 너는 엄마 옆에 있어야지.'
'엄마 그러지 말고 한산이 차 타고 가셔 그래야지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지.'
'그래 그래..말 많이 하지 말고 아무생각 말고 아무 걱정도 말고 니 몸생각만 해. 나중에 며칠 있다가 엄마가 전화 할께'
엄마는 십분도 안있다가....행여나 아픈 딸에게 말 많이 시켜 탈이라도 날까봐 감기라도 걸릴까봐
놀란 당신 마음 들키지 않으시려고 서둘러 떠나시는 거 같았다.
엄마랑 큰넘은 주차장으로 가고 나는 병실로 올라왔는데 남편이 전화가 왔다. 아들하고 통화 했다며 엄마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엄마 마음 졸이지 않게 말씀 잘 드려 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끊는데 뜨거운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27년 가까운 날들 그 어느날에도 엄마가 김치를 담아서 전주로 직접 들고 오셨던 적은 없었다.
오십이 넘은 이나이에도 팔십이 코앞인 엄마 반찬이 젤루 맛난 딸과 사위를 위해서 자주 해주시기는 하시지만
늘...먼저 물으시고 바쁘지 않은 날 왔다 가라 하곤 하셨는데 그것도 터미널도 아니고 대학병원으로 가지고 오실
생각을 하셨는지 참 엄마란....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아들넘이 그런다.
'엄마 할머니 무서운 분이시네 촉이 대단하셔.'
퇴원 하는 날..
엄마한테 오라는 엄마 말을 못이기는 척 엄마네로 갔다.
언제 내가 또 이렇게 엄마랑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겠나 싶어서였다.
엄마가 펴 주는 이부자리에 누워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텃밭에서 일하는 엄마 바라보며
엄마의 두툼한 옷 입고 산책도 하고, 토방에 앉아 햇살바라기도 하며 그렇게 엄마랑 2주 가까운
날들을 보냈다.
집 걱정은 말라는 남편과, 엄마 나 밥 잘 해! 라는 큰넘.. 다 큰 듯이 든든해 보이는 작은 넘 믿고
그냥 맘 편하게 주저 앉아 있었다.
동생내외가 정성으로 서울에서 정읍까지 날라다 준 반찬으로 몸을 채우고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해 주는 남편과 아들넘과
언니의 뜨듯함으로 마음 채우까지 가득가득 건강함으로 채웠다.
보름너머 집으로 가야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아직은 아니라며, 아직 피곤해 보이고, 기력도 더 챙겨야 하고
집에가면 일 투성이일텐데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이 늘어지시는데
작은넘이 엄마가 집에 없으니 집에서 밥을 잘 안먹는다고, 겨울 옷도 챙겨 줘야 한다고 아들넘 핑계를 대며 돌아왔다.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엄마는 어떻게 대학병원에 그것도 딸랑구 수술한 다음날 오실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라는 존재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니 내 엄마는 참 대단하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마네...나는 엄마처럼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전화 안해도 성화 안하시고 소식이 좀 뜸하다 싶으면 먼저 전화 하셔서 안부 물어 주시고,
날마다 주시면서 뭐 더 줄거 없나 살피시고...난 엄마같은 엄마일 자신은 없다. 다만 엄마는 나의 거울이다.
울엄마..요즘 혼자 식사하시는게 좀 걸린다..전화나 자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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