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집에 그냥 와 버려서

그냥. . 2020. 11. 24. 22:04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거야

입이 찢어저라 벌리며 하품을 연신 해 대고 있다.

오전에 일 잠깐 하고 엄마네 김장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전에 은행에 볼 일 있어 나갔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옆동네 코로나 떴다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정말?

정말이냐고 했더니 동네 이름을 말하며 그렇다고 한다.

급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네 동네 바로 코앞 옆동네에서 코로나가 집단으로 나와

마을 전체가 코호트 격리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시골 마을이 그렇듯이 엄마네 동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신

동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김장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마을 몇집이서 품앗이 형태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나는 고기랑 과일이랑 사 가지고 갈 오래된 규칙이 있고,

남편이랑 같이 가서 엄마 심부름도 좀 하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다시 오고, 나는 하룻밤 엄마 옆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 안하고 가면 그만이기는 하겠지만

어디 그게 그런가.

그 동네는 남편이 자주 가는 식당이 두 군데나 있는 곳이고,

다시 물었다 문자로.. 정확한 정보 맞아? 하고,

그랬더니 누구네집 아들이라고 이름까지 이야기한다.

읍사무소고, 농협이고 다 뒤집어졌다고..

그래서 언니한테 이러이러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더니

안 가는 게 맞다고.... 안 갈 수 없으면 갔다가 만 오라고..

그래서 엄마랑 통화해 보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치통이랑 고기랑 과일만 내려놓고 왔다.

밤 내내 엄마는 할 일이 많을 텐데 말이다.

죄송하기도 하고,, 염치없기도 하고,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리고 옆 동네 때문에 된통 놀란 어른들에게 근심을 또 

안겨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됐다.

손도 까딱 안 하고 김장하게 생겼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작년에는 아파서 엄마가 극구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해서 안 갔다.

그렇게 두 해를 그냥 꽁으로 먹게 되네

내년부터는 내가 할까 깊게 고려하고 있다.

엄마가 너무 힘드니까..

근데 한편으로는 엄마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늙었다고 할 수 있는 일 뺏어 버리는 거 아니라고 그러시는데 말이다.

 

 

집에 그냥 와 버러서

죄송한 마음을 한 가득 안고 저녁에 전화를 했다.

여덟 시 반쯤..

아직 미나리 씻어서 썰어야 하고, 김치 속에 박을 무도 썰어야 한단다.

죽도 끓여 놓고, 생새우도 갈아놓고 그랬다고,

엄마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생강차 만든 거 가져다 드렸더니

하나는 동생 꺼 한 변은 열기 쉬운 걸로 엄마 꺼..

엄마 집에 있는 거 작년에 가져다 드린 거의 드시지 않은 것은 가져오려고 했는데

엄마가 욕심을 내신다. 

너희 집에 얼마나 있느냐고~

두 개 다 엄마 꺼하면 안 되느냐고,

안 될게 뭐가 있어. 안 그래도 엄마 잘 안 드셔서 한 병만 가져다 드렸지 

잘 드시면 더 드리려고 했다고 했더니

이번 생강차가 맘에 드셨던 모양이다.

엄마가 욕심을 다 내시고 말이다. 

열심히 드시고, 추위도 잊고, 감기도 안 걸리시면 좋지.

대추랑 생강이랑 비슷하게 들어가서 생강 특유의 맛이나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잘 마신다.

추위 이기는 데는 최고다 싶다.

지난 토요일 거실에서 남편이 탁 탁 탁 생강 채를 썰고,

나는 주방에서 타 다다다다다다닥 채를 썰어서 만든

생강 대추차가 엄마 마음에 든 것 같으니 나도 기분이 좋아

엄마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또 내 공간 속에서 아이들 저녁 챙기고, 국수 재롱 보고,

바닷가 근처 주말주택으로 사용할만한 저렴한 아파트 없나 

둘러보다가 그렇게 밤이 깊어 간다.

마음은 굴뚝인데 현실은 어떨지 모를 일이다.

로망이었다.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바다가 창에 들어오는 곳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바다하고 너무 가까우면 또 만만찮은 단점들이 있을 것 같아서

걸어서 얼마 정도의 거리에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처음에는 전원주택이 탐이 났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관리가 안되잖아. 거기서 아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던 중 저렴한 아파트가 떠서 보고 있는 중이다.

뭐 급할 건 없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 한 시간에서 한시간 반 거리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여기서 바다는 그래도 그 정도는 잡아야 하니

감수하고라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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