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빗소리와 함께 뒤척인 탓인지
밥 먹자... 는 말과 함께 베개에서 머리를 떼는 것과 동시에
찾아온 편두통..
밤새도록 너 좋아하는 빗소리랑 즐거웠으니
이제 나랑 좀 놀아보자는 듯이 찾아왔다.
밥 챙겨 드리고...
인상 쓰고 아파 아파하고 있는 거보다
약 하나 먹고 움직이는 게 낫지 싶어 편두통 약 하나 털어 넣었다.
재미없는 사람이 자꾸 되어 가는 것 같다.
통통 튀는 매력이야 열여섯 통통 튈 나이에도 있었는가 싶은
나였기는 하지마는
소주 한 병 반쯤 마신 여자처럼
비틀 거리는 세상을 몸에 장착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라니
이건 아니올시다 싶다.
멍하긴 하지만 멀쩡해진 머리통의 부담스러움을 잊으려
옥상 먼지 한 번 쓸어내고
내려오니 이슬비가 웨딩드레스 베일처럼 곱게도 내리고 있다.
뜨끈한 라테 한잔 마시고 있으니
일주일 만에 가져보는 여유인가 싶다....
현실의 바쁨보다 열여섯 배는 더 바쁘게 살았다는 티를 내고 싶은
방바닥의 먼지들이 습기 묻은 김에 니 발바닥에 들러붙어 이리 저러 옮겨 다니고..
멍뭉이 올라 다닌.. 침대 시트도 한 번 털어 빨고 싶은데..
이불은 건조기보다 햇살에 맞기는 게 더 뽀송하더라고...
기다려봐서 날 좋은 내일이나 아님 날씨가 영 메롱일 것 같으면
오늘이라도 빨아야지 싶다.
더워하시는 우리 집 멍뭉이 미용도 시켜야 하고..
차근차근하면 오늘 안에 다 해결될 일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니 뒷산 능성이 마냥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할 것은 해야지..
방바닥도 닦고,
이불도 빨고,
멍뭉이 털도 밀고....
소매 한쪽 남은 뜨개질도 마무리하고..
여름 카디건 새로 시작도 하고...
착 가라앉은 날씨가 몸까지도 자꾸 바닥에 붙이려 하지만
난 굴복하지 않을 거야.
내가 공처럼 통통 튀는 싱그러움은 없어도
물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튀어 오를 기운은
아직 있으니까 말이다.
약이 좋긴 좋다.
이 좋은 약을 나는 왜 이렇게 싫어할까..
인상 쭈그러트리게 하던 편두통이 사라졌다.
큰아이 말이 맞다.
엄마! 약은 필요할 때 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왜 안 먹고 사서 고생이야.. 하던...
울 아들 말 잘 들어서 나쁠 게 없다.
이제 남편 말도 아들 말도 잘 듣는 내가 되어야겠다.
난 이제 누가 봐도 남편보다 아들 보도 몇 수쯤은 모자란
모지리이니까 말이다~ ㅎ..
커피 맛나네...
비가 와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