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편안한 하루하루(2023)

해마다 봄이면

그냥. . 2023. 5. 2. 10:05

해마다 봄이면 엄마와 제비 간의 주택 소유권 문제로

다툼이 있다는 걸 알기는 했었다.

그렌데 그 다툼이 이렇게도 치열하고 치밀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제법 된듯 싶다.

제비 두 마리가 처마 밑 전깃줄에 앉아 살피기 시작한 지가.

그러다 무단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미 엄마의 앞토방 처마에는 제비들이 무서워 꼼짝도 못 하게 할

폭이 한 뼘은 되고 길이는 내 키만큼이나 될법한 천을 처마에 반 접어 걸쳐 놓아

바람에 흔들흔들 제비가 날아와 앉는 걸 위협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가 지나니 제비들도 저거는 허깨비야 허수아비..

아무것도 못해! 빠른 걸 깨닫기라도 한 듯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곳에 가을 벼이삭이 익어가는 노에 쳐 놓아 새를 쫓는 반짝이 비늘 테이프를

기다랗게 걸어놓아 흔들거리며 반짝이게 했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없는 건 마찬가지이고..

밤이 이고 마당이나 토방에 사람 인적이 없어진다 싶으면 처마 밑 전깃줄에 앉아 무단 취침

그래 비 피하고 이슬 피하고 바람 피하고 거기서 자는 것 까지야 그렇다 한다지만

저 앉은자리만 지저분하지 않으면 되는지 어제는 뭘 먹었는지

무슨 색의 꽃으로 디저트를 했는지 자랑이라도 하듯

토방은 완전 변 판이니

그꼴 못 보는 엄마는 엄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제비들을 집 밖으로 아니 처마 밖으로

쫓아내며 여기는 내 집이야 하고 있지만

제비들은 눈도 깜짝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토방에 신문을 돌로 눌러 깔아 놓으시고 제비 배설물을 받아내고 있다.

그렇기 제비와의 전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생각이 없는 건지

여러 모 생각하고 자리 잡은 건지

꼭 사람 출입하는 머리 위에 집을 지으시고 계시다.

텃밭 깨 심을 때 쓰는 멀칭 비닐을 뜯어 커튼처럼 쭈우욱 펼쳐 달아 놓아서

바람이 살랑만 해도 살랑살랑 춤을 추는 비닐도

무서워하지 않는 제비..

처음엔 팔락 거리는 비닐에 당황하더니

당황하는 날갯짓에 비늘은 더 요동을 치더니

이것도 아무것도 아녀! 깨달은 건지 그 윗부분에 기어코 집을 짓고 계신다.

사람이 창문 안에서 비숫한 눈높이로 서서 노려보고 있어도

무서워 하기는커녕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다.

이미 제비에게는 엄마나 나는 뭐 어쩌라고.. 싶은

막가파 세입자인 모양이다.

엄마 집 짓겠어 했더니..

안 돼야.. 똥 싸고 흙 떨어지고 

엄마는 지금 잠깐 휴전을 생각하고 계시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제비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 백번을 날아다니며 

그 작은 입으로 그보다 더 작은 흙과 지푸라기와 풀대들을 물어와

붙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두지.. 저렇게 열심인데 불쌍하잖아

하기 쉽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룻저녁만 지나도 토방은 제비 배설물로 알록달록한데

그것이 내가 들락 거리는 머리 위 출입문이라면....

배설물 받힘을 만들어 주면 괜찮을까 싶기는 하지만..

엄마는 그것도 싫은 모양이다.

그 넘들이 거기에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란다.

빨래 줄에 전깃줄에 지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않자

그곳이 쉼 공간이자 화장실...

그러니 나도 싫을 것 같다.

아니 싫다. 우리 집에도 제비가 들락날락.. 안방 창문 밖 바로 위 처마..

대왕 비닐 걸어 집짓기 전에 다른데 알아보라고 내 보냈는데

엄마네 찾아든 제비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저렇게 열심인데..

저러다 한방에 털리는 수가 있다는 걸..

그 허망함이야 사람만 못할까 싶어 안쓰러워 자꾸 다른 데로 가라 가라 하지만

말을 듣지 않네..

더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저들도 시기가 있을 것인데

저렇게 집만 짓다가 이 좋은 시절 다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말이라도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쪽 저 뒷마당 처마도 넓고 좋은데..

아님.. 저 창고 처마 밑까지는 내가 엄마 어떻게 설득해 볼게

자리 옮겨

거기에 아무리 해야 소용없는 짓이야...

말하고 싶지만

집 짓기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저 한쌍의 제비는 나를 신경도 안 쓴다.

나 무섭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위협을 해도

금세 되돌아와서는 팔락이며 제 할 일을 한다.

나도 세상 사 쉽지 않지만

너희들도 쉬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

암튼 뭐든 더 보강을 해야 해..

엄마를 위해서 열심을 내는 제비들의 집 짓기가 더 늦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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