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씻고 나와 화장대 앞에서 노트북을 켜려다가 들고 나와
식탁에 놓고 앉았다.
캔이라도 하나 있으면 딱인데 하면서..
성질 급한 더위 탓인지 속에서 올라 온 화끈 거림 탓인지
더위가 느껴지는 밤이다.
참 좋다...
좋다 진짜..싶다.
내가 언제 식탁에 노트북 두고 앉아 일기를 쓴다고 여유 부린 적 었었던가.
내가 언제 거실에 혼자 나와 티브이를 보면서 뜨개질해 본 적 있었던 가..
내가 언제 텔레비전 소리 피해 아들 방에 들어 누워 본 적 있었던가...
내 공간은 오직 남편과 멍뭉이와 텔레비전 소리가 있는 우리 방..
그리고 일하기 위해 드나들던 주방...
작년에 결혼 삼십 주년 되던 때 아무것도 안 해줘도 좋으니 꽃밭 하나만 만들어
달래서 생긴 나만의 꽃밭..
그것이 전부였는데.
꿈길 걷는 남편 방해하지 않고 주방에서 노트북 자판 내 맘대로 토닥 거리며
두드려도 신경 쓰이지 않고,
저 앞 거실 창에 비친 예쁜 식탁등 아래 김여사..
이런 여유라니..
이게 정말 내가 누려도 되는 편리함이고 즐거움이고 기쁨이고 행복인가
싶기도 하다.
이불장이 좀 부족하다 싶어서 거실 작은 팬트리 공간에
선반 하나하고 윗부분에 옷걸이 봉 하나만 질러 주십사 했더니
장을 만들어 오셔서 넣어 주셨다.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부담드리거나 무리가 되면 어쩌나 싶어 조심스레 말씀드렸는데
너무도 완벽하게 해 오셨다.
다음날 다시 오셨기에 정리된 이불이며 갈 곳 없던 겨울 옷들이
정리된 모양을 보여 드리며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더없이 좋은 이불장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다용도실 선반을 만들면서..
가능하시면 창틀 아래쪽으로 해서 선반을 하나 만들어 주십 사했다.
창문만 안 가리면 된다고 했더니..
남편이 뭐 하려고 묻길래
꽃도 보고 비도 보고 눈도 봐야지
거긴 내 자리야~ 했었는데..
사실 공사 시작 초반부터 창을 좀 크게 내어 달라고 그럴까?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미 견적은 나온 상태이고 이러쿵저러쿵 남편이 많은 것들을
곁들여 놓은 상태에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입주하고...
다용도실 선반이 나중에 들어오게 되면서..
창은 그래 저 정도면 되겠네 싶었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서 비도 보고 눈도 보고..
빗속에 꽃도 보고.. 눈 속에 나무도 보고 싶어서
창 아래로 선반 하나 말씀 드렸더니
테이블이요? 하길래
아니요 그냥 선반 하나 길게 창쪽으로 내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했는데
창 아래쪽으로 해서 내 편안한 위치에 독립된 선반이 자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말만 하면 이루어지는 요술 램프도 아니고..
남편도 하고 싶은 대로하며 살라 하고..
집 고쳐 주시는 분도 세심하게 귀 기울여주시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시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뜨끈한 차 한잔 하면서 뜨개질을 해도... 될 것 같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고,
수도 없이 많은 불면의 밤들 중에서
부수고 새우고를 수 백번을 하며 상상했던
내 머릿속의 그것보다 현실은 훨씬 더 편리하고
좋아졌다.
역시 전문가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정 들여야지 생각도 않고 그저 얹혀사는 모양새로 살았는 내게
좋아졌다. 이 집이..
내가 여기 사는 것 같다. 이제
얹혀 사는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
살아 갈거라는 기분이 든다
하나하나 귀 기울여 주고 내 기준에서 소통해 준 남편이 고맙고
어쩌면 과하다 싶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이야기들을 허투루 듣지 않고
반영해 주신 책임자 분께도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 리모델링을 해야겠다고 한다면
누가 집 고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 나는 꽤 오랫동안 우리 집을 설계부터 시작해서 작은 부분 하나까지
신경 써 주신 센텀하우스 이분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연이 참 중요해...
내가 이렇게 이 시간에 여기 앉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 누가 알았어.
세상 참 건강하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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