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편안한 하루하루(2023)

흐린 허공에 낙엽이 날린다.

그냥. . 2023. 11. 5. 13:20

 

급히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따듯한 믹스커피 한잔 만들려고 포트에 물을 올리고

노트북을 살려놓고...

시린 발가락을 위해 양말을 신고

믹스커피를 물에 풀어 자리에 앉았다.

뜨개질이나 하면서 창밖이나 보면서 해야지 했는데

바람에 낙엽이 나비처럼 날리고 있었던 거다.

조금만 늦으면 잠시 한눈 팔다 바라보면

저 마르고 바스락 거리는 잎들이

금세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조급함은 무엇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뜨개질은 아무래도 창밖에 시선을 오래 둘 수 없으니..

오디오 북보다는 잔잔한 영웅이 노래가 흐르게 하고 

사실은 원두커피보다 더 좋아하고 정이 가는 믹스 커피를 만든 건

그냥...

지는 낙엽에 대한 나만의 격식을 갖춘 예의 같은 거랄까?

흐린 날...

비 온다 해서 

아들에게 가는 일정을 미루었는데

비도 안 오고 해만 들락날락 한다 투덜거렸었는데

바람이 숨기지 않고 바스락 소리를 내고

나비인 듯 처연하게 날리는 곳에 내 시선을 묶어 둔다.

저...

뒷집 넓은 마당 오래 된 느티나무 두 그루의 흩어지는 나뭇잎이 나를 이렇게

붙들어 놓을 줄 애가 닳게 할 줄은 미쳐... 알지 못했다.

이 스산함을..

이 아쉬움을..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이 마음을..

눈인 듯 비인 듯.. 날리는 저 낙엽들이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일기라는 것이라고 쓰기 시작한 지는 언제 적 부터였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사춘기 시절부터 그렇게 저렇게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라 했고,

그 어느 순간부터 비가 좋았고, 코스모스길이 하늘이 하염도 없이 좋았고........

눈은 또 눈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함께 하고 싶어 했었는데..

지금 이 흐린 가을날의 

지는 낙엽을 집안 내 창가에서 바라보는 일이

이리도 가슴 시린 일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몇 구절 좋은 글귀로 풀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서

어느 계절이건 어느 시절이건

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느낌이 물씬 묻어날 수 있는 그런 글들을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내게 그런 능력이 없음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배워야 해...

뜨개질 배우듯 글 쓰는 것도 배워야 해..

그래서 내 마음에 흡족하고,

내가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있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싶다.

뜨개질처럼..

글쓰기 강좌를 쫓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는 했었지만

게으르고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운전이 어려워지니...

시골이다 보니

다른 것들은 제법 강좌나 그 비슷한 것들이 있는데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은 찾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강좌가 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지 싶다.

낙엽이 진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이 사그락 거리면 

그래 그 바람 따라 떠나고 싶었다는 듯

그 바람 핑계 삼아 낙하하고 싶었다는 듯 그렇게 날리는 낙엽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묵직한 뭔가가 가슴을 누른다.

깊은 한숨을 올리며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낙엽인지 나비인지 싶은 호랑나비 한 마리가 지는 나뭇잎 사이로

유유히 날아 들어간다.

비가....

오긴 오실 모양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흐린 허공에 나뭇잎을 흩날리며 가을이 허허롭게 깊어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그 끝자락은 또 다른

기다림이 샛별처럼 반짝이고 있겠지만...

아직은 조금만 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시월이 갔듯이

십일월도 가겠지..

그리운 것이

아쉬운 것이

안타까운 것이

서러운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비 내리는 날보다 더 깊은

가을을 흐린 허공에 날리는 낙엽이 그리고 있다...

바람이 세애 하니 창을 통해 들어온다.

춥다.... 보다는 좋다...라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가을이 그렇게 후딱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을..

그리고 낙엽...

그리고 흐린 하늘에 바람..

열네 살 소녀적 

끄적이고 싶어 하던 감성은 쉰도 꺾어진 이 나이에도 어쩌지 못하고 있음은..

타고난 고질 병 아닌가 싶다.

그냥..

지금 이 시간

이 묵직한 가을 느낌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다.

남편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벗어날

쓰잘데 없는 가을에 대한 짙은 감성을 말이다.

누가 알까..

이렇게 철없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미치듯 흔들리는

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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