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바람이 싱글 거린다.
운동을 갈까 가지 말까..
운동을 하는게 맞는지 확신이 없다.
제자리 걸음인 것은 둘째치고라도
뭔가 쫌 무리하는 듯한 느낌을 몸이 자꾸 보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금요일인데 오늘 안 가면 내일모레까지는 못하는데..
망설이다가 마당에 나갔다. 우선 습관처럼 마당 한 바퀴 돌아보고
내키는 대로 하자 싶었다.
마당 한 바퀴 둘러보고 텃밭에 앉아 잎사귀 뒤집어 보며
건강한지 아픈지 살피고..
풀 몇 개 뽑고..
다시 꽃밭으로
어제 보이지 않던 풀들이 엄청 많다. 분명 어제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뽑아내기도 힘든 땅에 붙어 잔디처럼 번지는 풀..
아..... 안 되겠다. 날도 흐리니 오늘은 풀뽑기 아주 적당한 날..
집안으로 들어와 옷 갈아입고 장갑 끼고
모자까지 둘러쓰고 나와 앉았다
그래 오늘 너랑 나랑 전쟁 한 번 해보자 하고..
노동요를 틀어놓고 연승을 이어가며 호미와 손으로 풀들을
들어내고 있는데
멍뭉이가 나를 찾는다..
없는 척 조용히 못 들은 척 그러고 있는데
멍뭉이는 여전히 나도 나갈래 나도 나도~ 하며 짓어대서
대문 먼저 닫아놓고
멍뭉이를 내놓았다.
이 넘은 그냥 졸릴 뿐이다.
그러니 그냥 집안에서 소파나 지 집에 들어가 꿀잠만 자면
그만인데 왜 못 나와 안달이더니
나와서는 벌서듯 엉거주춤 서서는 나만 노려보고 있는 걸까...
못 본 척 풀을 뽑고 뽑고 뽑고 또 뽑아도,..
풀은 많다.
바닥에 붙어 손에도 잘 잡히지 않지만 푸른빛으로 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름 모를 풀을 호미로 긁어내고 긁어내고 긁어내도..
풀은 여전히 많다.
라일락 뒤에도 담장아래 붙은 장미조팝 뒤에도 명자나무 뒤에도
풀은 있다.
햇살도 잘 들지 않겠고만 어찌 풀은 땅만 있으면 자라나는지..
두 시간 정도 풀과의 전쟁을 치르고..
나도 지치고 멍뭉이도 지쳐 보여서 2차전은 다음에 또 열심히 싸워보자~
손을 털며 들어왔다.
라테 한잔 만들어 꽃밭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있다..
두 시간이나 저기 있다 왔으면서 뭐가 또 아쉬움이 남아 여기 앉아 있는지...
가까이서 보면.. 청보라색 꽃이 참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청보라색이 제법 많아 보이는 꽃밭..
네모필라, 캄파눌라 차가프록스 델피늄 베로니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청보랏빛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거기서 제일 이쁜 청보라는 이제 마악 피기 시작한 델피늄..
근데 여기 창가에서 보기엔
확실히 밝은 색 꽃이 눈에도 확 들어오고 예뻐 보인다.
동자꽃, 아네모네 패랭이 금어초 백일홍 등등..
아직 노란 매발톱도 한창이다. 대부분의 매발톱은 씨앗을 여물게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말이다.
그냥 가만히 꽃밭을 내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잘 간다.
꿀벌이 버바스쿰 꽃으로 몰려든다.
향이 짙은가 보다.
지난번에 둘째 동서가 왔을 때 향이 엄청 진한데 뭐예요? 묻는데
잘 모르겠더니 버바스쿰이었나 보다.
나만의 꽃밭에 날마다 찾아드는 손님들..
나 없으니 바람이 조금 더 수다스럽다.
햇살이 조금 더 바삐 움직이고 꿀벌이 더없이 자유롭게 꽃들 사이를
오고 가고 까치들이 깍 깍 흥을 돋운다.
나 있어도 수다스럽고 바쁘고 자유롭겠지.
내가 못 알아듣고 못 느끼고 몰라서 그렇지.. ㅎ..
어제보다는 덜 더운가 봐.
제법 싸아하게도 느껴져..
멀리서 뻐꾸기도 울고.. 혼자 바쁜 오디오 북은
들어주는 사람 없어도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다시....
다시 듣기를 해야겠다.
바람이 좋고 커피가 맛있고 새소리가 정겹고 꽃들이 이쁜
5월 24일 이 여유로움이 참 좋다...
지금 내 행복지수는 100
가끔은 꽉 채워져도 괜찮잖어. 이렇게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