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저녁에는 쪽달이 별이랑 사이좋게 곱게도 반짝여서
기분 좋았다.
가끔 보는 달이며 별은 마치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온 반가운
문자 같다.
늘 있지만 없는 듯.. 없지만 있는 듯 그래서 편하고 반가운 달 별..
그 쪽달을 보면서 사다리에 살금살금 겁을 잔뜩 먹은 강아지처럼
올라가 줄조명을 걸었다.
무섭다. 높은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비틀 거리는 세상이 무섭다.
그렇지만 이런 것까지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심조심 겁 잔뜩 먹은 다리와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걸어 놓은 줄 조명이 반짝이니 좋았다.
너무 좋더라고..
이게 그렇게 부러웠는데..
남의 집 정원에 반짝이는 겨울빛 밤이 너무너무 좋아 보였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집안으로 들어가며
큰아이한테 동영상찍어 보냈다.
이야 이쁘네 트리도 하나 만들어 엄마! 하길래
아니야 이거면 돼~ 했다.
나중에 구경갈께...하는 고마운 아들
엄마 기분에 장단도 잘 맞춰주는 아이이다.
저것이 한참 젊은 아들에게 뭐 그리 특별한 것이겠어.
엄마 기분 좋은 것 맞장구 쳐 주는 거지..ㅎ
남편에게 줄조명 달았다고 이쁘다고 자랑을 했다가
야단만 맞았다.
사다리 탔다고? 미쳤구만... 하고..ㅠ.ㅠ
괜찮아.. 잠깐이었는데 뭘...
죽을라고 환장했냐? 버럭..ㅠ.ㅠ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터는 부탁할게..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움 보다 미안한 마음을 불러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호두과자 다 먹었냐? 묻길래..
아니 몇 개 남았어. 했더니
먹어. 하길래
어 이따 자기 전에 먹으려고..
아니 지금 먹어 자기 전에 뭐 먹으면 아침 잘 못 먹잖아... 하길래
아냐.. 지금 먹으면 소화가 잘 안돼 팥 들었잖아.
자기 전에 먹으면 지가 힘들 건 말 건 어떻게든 소화 되드라고.. 했더니
그렇게까지 먹냐? 하길래..
그러게.. 했지만 나는 호두과자 다섯 개를 먹어 치웠다. 방금 전에..ㅎㅎㅎ
저 반짝이는 불빛이 보고 싶어서 창문을 열어 봤더니 안 보인다.
근데 비가 내리고 있다.
우와 비다..
비가 오네.. 분명히 아까 쪽달이랑 별이 기분좋게 인사 했는데...
살그머니 현관문 열고 나오니
토닥토닥 토다닥 겨울비가 또 만나서 반갑다 한다.
한참 빗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다. 비가 내리니 줄조명이 더 예쁘다..
이제.. 난로 하나 사야지..
그리고 가끔 이렇게 난로 켜 놓고 앉아 밤 비나... 아무도 몰래 내리는
눈이나.. 추위에 오소소 떨고 있는 밤공기랑
데이트해야지...
ㅎ..
누군가 그랬다.
언니는 참 작은 것에 행복해하시네요..
난 참 작은 것들에 감동하더라고
비나 눈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이나... 이런 반짝이는 줄조명이나..
하물며 지는 낙엽까지도...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내가 나라는 걸
나도 모르고 살았다.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니 내가 예민해지지만 않으면
좋은 것이 좋아하는 것이 기쁘고 행복한 것이 천지에 널려 있는 나..
그런 나를 조금 더 아끼고 보살펴야겠다.
기분 좋은 밤이다..
'지나간날들 > 괜찮은 오늘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1) | 2024.12.07 |
---|---|
세상 시끄러운데 (1) | 2024.12.06 |
오늘은 (0) | 2024.12.04 |
엄마를 만나는 날에는.. (2) | 2024.12.03 |
말이란 것이.. (2) | 2024.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