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산책 다녀와 마악 마당에 들어서는데
쌀가루 같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멍멍아~ 눈 눈 온다. 하며 골목 잠깐 더 걷자 하는데
이미 멍뭉이는 바람도 차가운 날
걸을 만큼 걸었다는 듯
쌩하니 현관 앞으로 더 빨리 달려 직행한다.
그래.. 네가 눈이 좋은 건 알기나 하겠냐~
마당에 잠깐 서성 거렸더니
후딱 들어가자며 애절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곤 그쳤다. 눈이..
올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좀 내려주지..
혹시나 싶어 밤 아홉 시 반 너머 창문 열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멍뭉아~ 눈 보러 가자..
자다 벌떡 깬 우리 집 멍뭉이 가자 소리만 알아 듣고는
후다다닥 따라 나와 하얀 세상이 신통방통한지
뛰 댕긴다.
고요한 밤
고요하게 뛰고 달리다가 후다다닥 들어왔다.
마구잡이로 찍힌 멍뭉이 발자국 내 발자국이
새로 내린 눈으로 덮였으면 했는데
아직 그대로네.... 내일 아침이면 말끔히
상처 없는 눈 마당이었으면 좋겠다..
대책 없이 찍어 놓은 발자국이..
내일 아침 눈 덮인 고운 세상을 기대하면서 내려다 볼
뒷집 옆집 사람들이 감탄할 수 있도록..
눈 내린 세상에 쏟아지는 가로등은 더없이
따듯하고 곱다.
콕콕 콕콕 수천 번? 수만 번?
양모로 인형 만드는 걸 어디서 보고 만들어 보고 있는데
쉽지 않네..
콕콕 콕콕 무한 반복..
신통방통하니 내 맘대로 가 아니고 지 맘대로
살아나는 게 신기하기는 하다.
그래도 모양이 쫌 우스꽝스러워.
귀여운 인형을 만들자 했는데...
꿈은 컸다. 열심히 연습해서 울 멍뭉이 닮은 꼴 인형 하나 만들어 봐야지
했는데... 글쎄다..
그래도 제법 시간도 잘 가고..
오디오 북 들으면서 놀기에는 그만이다.
다만 손가락 몇 번을 바늘에 찔렸다. ㅠ.ㅠ.
만들다 보면 늘겠지..
읍사무소 체력단련실에 들어가려면
지문인식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얘가 나를 자꾸 거부한다.
아니 거부라기보다는
너 누구니?
너 누구야?
난 너 몰라..
너 누군데 아는 척을 해! 한다.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날 추워지기 전에는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는데
날 추워지니 아예 모르는 척하기 일쑤다.
다섯 번은 기본으로 거부하고...
그러다 눈 마주치는 사람 있으면 안에서 열어 주시고
아님 여덟 번이고 열 번이고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니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너를 알거든
네가 나를 통제해도
나는 너를 통과하고 말 꺼야.. 하고..
체력 단련실뿐만이 아니다.
폰 지문인식..
얘는 더 웃긴다.
아예 맹꽁이다.
내가 지 주인일 걸 아예 모른다.
내 손에서 하루종일 살면서
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필요할 때면 나를 모른 척한다.
어쩔 수 없이 패턴이나 비번...
내 잘못인가..
폰 잘못인가..
체력단련실도
폰도 모른 척하기로 대동단결 했는가 싶다.
건조함 때문인가
손가락에도 살이 없는 탓인가....
뜨개질을 너무 많이 해서
아니 손으로 꼬물 거리는 거를 너무 좋아해서
지문들이 다 사라져 버렸는지...
눈 밭 위에 발자국 또박또박 박히듯...
내 지문도 또렷하면 좋으련만..
거칠어진 손이 관리 좀 해달라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단련실 인식기도 폰도 문제가 아닌
손이 건조한 거라고.. 말하고 싶을지도~